Mia Kyoungmi Lee
이경미

  

CITY CRACK

    코로나19가 남기고 간 질문. 2022     
    ︎︎︎왜, 지금, 혐오와 이주인가? (Text)    
    1인을 위한 테이블, 함께에 관한 물음들. 2021
    ︎︎︎적절한 간격들, 1인분의 삶. (Text)   
    도시를 만드는/도시로 만들어진 감정의 지형들. 2020
    ︎︎︎주체와 자리, 새겨진 감정들. (Text)  
    가상의 음식지형과 도시의 틈새들. 2019
    ︎︎︎1인 미디어에서의 먹기와 음식지형들. (Text)  
    ︎︎︎비통제의 플랫폼, 고가하부와 1인 미디어. (Text)


PUBLIC PUBLIC
    2045 거주(불)가능도시. 2024
    ︎︎︎ 에너지학교. (Seminar)    
    ︎︎︎ 새들을 위한 기념비. (Workshop)
    ︎︎︎ 일렉트립. (Local Trip)    
   신흥동 표류기 Records of Drift in Shinheung. 2023
   Document the Undocumented. 2022
   소멸지역 피칭데이. 2022
  

점점점 프레스 Gemgemgem Press
    박혜수 비평집. 2024
    ︎︎︎질문하는 사람. (Web page)
    ︎︎︎A Questioner. (Web page)
    로컬 매거진. 2024-


10000 ARTS 10000 ACTS

    ?THE NEXT!. 2022-23
    New Play, New Connection, New Normal. 2020-21
    ︎︎︎누가 광장을 두려워하랴? (Text)   
    ︎︎︎고립된 서사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법. (Text)
    ︎︎︎당신의 마음을 방역해 드립니다. (Text)   
    ︎︎︎포럼: 공공에서 공감으로. (Video)
    ︎︎︎아카이빙 북. (Publication)
    Playful - 고가아래 신나는 예술놀이터. 2019
    ︎︎︎해방된 놀이의 예술. (Text)
    옥수역 고가아래 공공예술 Playful. 2018
    ︎︎︎경험으로서의 예술: 골목에서 고가하부까지. (Text)  
    성수동 골목에서 즐기는 공공미술. 2017


토론극장: 우리_들 Forum Thatre: URI

    여기, 관객들이 있다. 2020 (Text)
    출판물 <토론극장: 우리-들>. 2020 (Publication)
    토론극장 2021 리뷰. 2021 (Video) 
    토론극장 9-10막. 2022 (Project)


금천아티스트랩 Geumcheon Artist Lab

    14인의 목소리 14 Voices from Here. 2022
    ︎︎︎만남과 대화가 만들어내는 예술. 2022 (Text)
    ︎︎︎이들이 금천이다. 2022 (Video)
    계란후라이, 선홍빛, 나, 골드베르크. 2021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이다. 2021 (Text)
    ︎︎︎웨비나-토크 프로그램. 2021 (Video) 
    금천아티스트랩. 2021-2022 (Website)


작은 테이블과 큰 물음들 Small Table, Big Question

    작은 테이블과 큰 물음들. 2020-2021 (Website)
    참여 기획전<TranstopiaⅠ>. 2021 (Video)
    성남 원도심과 개인을 가로지르는 것들. 2021 (Text)


사라지지 않는 1

    태평 빈집 프로젝트. 2019 (Exhibition)
    성남 원도심을 만들어 온 개인들을 찾아서. 2019 (Text)
    국제 학술지 리뷰 <Public Art 公共艺术>. 2021 (Text)


하얀 벽의 고백 Voices from the Walls
     전시 구성. 2023 (Exhibition)
     전시 서문. 2023 (Text)


TEXT

    횡단하는 천川으로 땅의 도시를 감각한다는 것. 2023  
    도시의 미래를 '지금 여기'의 삶으로. 2023
    얽힘의 장면들. 2023
    몸의 좌표에서 해방되는 과정의 예술. 2023
    미미한 것들의 이름을 찾는 여정. 2023
    비행기 소리의 소리의 소리: 소리에 체화된 기억. 2023
    공공예술을 말할 때 이야기 하지 않는 것들. 2022
    식탁 위의 예술 Art on the Table. 2022
    창발하는 순간들을 조우하며. 2022
    미래도시를 잉태하는 장소로서의 건축적 공간. 2021    
    다른 존재 되어 보기. 2021    
    인간과 기계, 공진화하는 주체들. 2021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2021
    불완전한 감각의 공간. 2020 
    새로운 ‘모뉴먼트’를 향하여. 2020 
    의미가 있던 자리. 2020 
    당신의 상상을 품은 달. 2020
    비가시적인 삶들이 조우하는 소리의 풍경. 2020
    실험의 공간, ‘유리-거울’ 건축. 2018
    맥락이 지워진 공간에 대한 탐색. 2016
    그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 2016
    좀 더 어두운 숲 A bit more darker forest. 2016
    시간의 향기 The Scent of Time. 2014    
    바람 불면 When the wind blows. 2014 
    자연스러운 Natural. 2014 
    발견하는 사람, 예술가. 2011
    도시적 공간에 대한 오마주. 2011
    The Simple Life Part 2. Pastoralism. 2011
    A Pictorial Scene. 2011


UPCOMING

    이주, 혐오, 코로나, 서울, 암스테르담. 2022- (Project)
    질문하는 사람 - 박혜수 비평집 발간. 2022-2024 (Publication)
    CITY CRACK #5. 2023 (Publication)
 

ABOUT 

Copyright © 2021-2024, Mia Kyoungmi Lee, All rights reserved.



Mark

토론극장: 우리_들
여기, 관객들이 있다
Spectators are present



장면들

#1. 전시장 한 켠에 관객들이 모인다. 의자와 모니터만 준비된 빈 공간에 적막이 흐른다. 대기하는 관객들의 표정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묻어 있다. 그리고 시작. 정신분석 전문의가 관객에게 일일이 다가가 천천히 눈을 마주친 후 꽃과 강아지풀 중 하나를 건네 준다. 사회학자는 느닷없이 짬뽕과 짜장면 중에 무엇이 더 좋은지 묻고 O나 X 자리로 이동하라고 주문한다. 문화인류학자는 10시간의 비행 동안 비행기 옆자리에 누가 앉으면 좋을지, 경제학자는 모르는 사람과 10만원 이내에서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를 줄지 생각해보라고 질문한다.

#2. 두 패널이 부모와의 관계로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자매의 사연을 소개한다. 그리고 언니와 동생 중 누구의 입장에 동의하는지 의견을 묻는다. 관객석에서 웅성웅성, 조금씩 의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 중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빗대어 이야기하는 관객이 생긴다. 그 의견에 반대하는 다른 관객. 두 관객 사이에서 입장차이로 점차 언성이 높아진다. 더욱 많은 관객들이 둘 사이의 입장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담을 말하고자 손을 든다. 불편해진 상황에 난감해하는 관객도 있다. 토론이 한참 진행될 즈음 앞서 언성을 높였던 두 관객이 배우임이 폭로된다. 관객석에서 동요가 일어난다.


<토론극장: 우리_들>(이하 <토론극장>)에서 관객들은 엉뚱한 질문에 의문을 품고 감정적인 동요를 겪으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여기서 그들은 자신을 철저히 감춘 채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청중의 역할만으로 부족하다. 설정된 상황[1] 속에서 다른 참여자들과 매순간 영향을 주고받으며 선택하고 이동한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과 사적인 경험)을 드러내도록 요구당한다.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갖는가? 그 선택이 과연 본인의 생각이 맞는가? 집단 안에서 완벽히 개인일 수 있는가? 관계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받는가?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모습인가? 당신은 그들에게 또 어떤 모습인가? 왜 인간은 편을 가르고 집단을 만드는가? 관계 안에서 평등할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배운 적도 질문해본 적도 없었던 일상의 주제가 수면 위로 올라가는 순간 관객은 자기자신과 사회의 민낯을 마주한다. ‘왜 엄마는 맨날 딸인 나에게만 화풀이를 하는가’라는 질문이나 ‘아뿔싸, 그 동료의 감정 쓰레기통이 나였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인식하고 행위하는 주체로서의 관객

<토론극장>에서 관객은 삶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인간관계의 고리와 선택의 순간을 재연하는 무대 위에 서게 된다. 나로부터 파생된 가족과 친구, 동료 집단의 생리와 “우리”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너희들”을 배격하는 인간의 본성에 다가가보는 일종의 극장인 셈이다.[2] 그러나 무대에 올려진 서사는 개인의 삶에 밀착된 주제이기에 거리두기도, 공론장에 사적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관객이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며 보다 자연스레 토론에 참여할 수 있을까? 바로,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의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The Theatre of the Oppressed)>에 힌트가 들어있다.

아우구스또 보알,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 현장 이미지
리버사이트 교회, 뉴욕시, 2008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은 구체적인 갈등장면을 제시하고 관객에게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한 해결책을 생각해서 직접 연기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해결하지 못한, 다른 결말과 변화의 가능성에 관하여 관객이 다함께 토론하도록 이끄는 구성을 취한다.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관객이 배우이자 퍼포머로 분할 수 있도록 여기서는 두가지 장치를 고안했다. 첫째, 전체 집단을 이끄는 ‘조커(joker)’가 있다. 그는 관객을 통솔하기보다는 안내하고 적절한 개입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둘째, 구체적인 실행단계 전에 놀이와 신체활동 등의 웜업 활동을 선행한다. 이는 관객이 심리적이고 정서적으로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로 진입하도록 이끌어준다.[3] 이와 같은 두가지 장치는 <토론극장>을 기획하는데 중요한 레퍼런스가 되었다. 그리하여 <토론극장>에서는 패널/작가/기획자가 때로는 관객이 되어 개입하기도 하고 안내자가 되어 조커처럼 진행의 부스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게임이나 실험, 심리극을 전반부에 배치하여 사고의 유연함과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도록 의도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관객이 중요한 것인가? 연극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서 관객은 보통 행위자라기 보다는 수동적인 감상자의 지위에 머물러왔다.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보기만 하는” 관객을 수동적인 구경꾼(spectator)으로 지칭하며, 이는 인식하고 행위하는 능동적인 존재와 구분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더 이상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에게 수동적이고 일방향적인 관람방식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미적 경험들을 제시하는 것이 주요한 의제임을 주장한다. 여기서 미적 경험이란 예술에 있어서 특정한 경험방식을 통해 감각적으로 지각되고 사유되는 틀을 인지하는 것이다.[4] 본인이 중요한 참가자라는 인식을 통하여 주체가 되는 경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관해 인식하는 것. 또한 다른 참여관객과의 협업의 과정들을 통해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 관하여 사유하는 것. <토론극장>은 “토론연극”의 방식을 차용함으로써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반으로 관객 스스로가 일종의 배움과 경험적 지식을 만들어 가기를 독려한다.


배움과 예술의 경계에서

대중들이 참여하여 만들어내는 이러한 풍경은 다른 관객에게 일종의 퍼포먼스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프로그램 진행 중에는 참여하지 않은 관객들이 전시장 한 켠에서 이뤄지는 낯선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이처럼 대중 무리 혹은 개인이 다른 관객 앞에 드러나는 연출방식은 이미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바 있다.[5] 예를 들어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의 <크리스탈 퀼트(The Crystal Quilt)>의 경우는 60세 이상의 여성 430명이 함께 모여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를 테이블에서 나누는 퍼포먼스를 꾸렸다. 그리고 이는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현장과 방송을 통해 관람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6] 한편 작가와 관객이 1:1로 마주하는 작업,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예술가가 여기 있다> 역시 관객 참여로 완성된 퍼포먼스의 좋은 예이다.

그러나 <토론극장>은 관객의 열린 경험 이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한 강연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위의 작업들과 구별 지점이 생긴다. 정신분석, 사회학, 경제학, 문화인류학 등의 연구자 및 학자, 예술가와 기획자로 구성된 ‘설계자’들은 게임, 실험, 심리극 등을 설계함으로써 강연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누구든 쉽게 접근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어진 강연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일방향적인 강연으로 구성되는 세미나의 전형적인 형식을 예술을 매개로 뒤틀어 버림으로써 관객의 수동성을 전복시키려는 의도이다. 교육과 예술의 경계에서 애매하게 줄을 타는 이 예술적 실험은 ‘렉처 퍼포먼스(lecture-performance)’와도 연결될 여지를 보여준다.

수잔 레이시, <크리스탈 퀼트>, 1985-87
© The artist Photo: Gus Gustafson


아이작 줄리앙, <자본론 낭독>, 렉처 퍼포먼스, 베니스비엔날레, 2015
© Andrea Avezzù;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렉처 퍼포먼스는 일찍이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로부터 시작하여 아이작 줄리앙(Isaac Julien) 등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시도된 바 있다. 관행화된 예술의 어법이나 사회제도가 지닌 부조리함을 퍼포먼스와 강연의 방식을 섞어 관객에게 질문하기 위함이다. 렉처 퍼포먼스의 시작으로 거론되는 요셉 보이스의 1965년작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방법(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은 작가가 직접 죽은 토끼를 들고 다니며 그림에 관해 알 수 없는 설명을 하는 퍼포먼스이다. 한편 아이작 줄리앙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이탈리아관 무대에서 배우들이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낭독하게 하는 렉처 퍼포먼스 <자본론 낭독(Das Kapital Oratio)>로 주목받았다. 이러한 도발적인 작업은 예술어법으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강연과 퍼포먼스를 섞은 새로운 형태를 취함으로써 관객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기존의 관습적인 예술에 관한 비판적인 관점은 결국 우리의 삶과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관습들에 관하여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라보기를 권고하는 것이다.


다양한 주체들을 만나는 공론장

그러나 참여 활동과 강연으로 구성되는 <토론극장>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관객 사이에서 발생하는 토론이다. 따라서 렉처 퍼포먼스가 연설이나 강연의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상호 교류보다는 설득을 주된 목표로 삼는 반면, 본 프로그램은 “대화와 토론을 위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사회 참여적 예술의 특성은 관객이 흥미로운 의견의 교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담론의 공간을 개방하고, 구축한 구조 안에서 사람들이 그들의 콘텐츠를 보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7]

“이 실험(<토론극장>)이 예술적 실험으로서 갖는 의미는 샹탈 무페(Chantal Mouffe)가 제시한 바와 같이, 사람들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워주고 질문을 생산하는 비판적 예술로서 기능했다는 점에 있다. 그에 따르면, “비판적 미술은 불화를 촉진하는 미술이며, 지배적 합의가 모호하게 하고 지우려 하는 것을 가시적(visible)이게 하는 미술이다. 이는 기존의 헤게모니의 프레임 안에서 침묵 당한 모든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미술 실천에 의해 구성된다.” 
- 조주현, 「대립을 논쟁으로, 적대자를 상대자로 전환하는 심리극장」[8]


이러한 미술실천에서 중요한 지점은 대중과 관객을 대하는 예술의 태도이다. 참여예술에서 관객은 “각자 내부에 창조력을 가진 소중하고 능동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대안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도록, 그리하여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잠재적 힘을 스스로 믿고 주체적인 존재로서 인식하기를 바란다.[9] 다양한 정체성이 용인되는 전시장은 민주적인 실험실로서 개인들에게 공공에의 감각을 재확인시켜야 한다. 다름에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술활동을 통해 경험해보는 것이다. 열린 토론을 위한 공론장의 존재가 무색한 현실에서 예술의 역할이란 공공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개인들에게 목소리를 내어주는 각축장이 아닐까?

울프 에릭슨(Ulf Eriksson), 「열린 미술관: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의 사례로 본 시민의식 양성」
MMCA 연구 프로젝트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 2019, p.28.



  • <토론극장 : 우리_들>(2020) 출판물 수록 글





[1] <토론극장>은 매회 다른 실험을 설계하였다. 1막 ‘당신에겐 꽃을 드릴께요’는 권위자의 호불호에 의한 편가르기를 진행했고, 2막 ‘얼굴 없는 목소리’는 벽 사이를 두고 두 집단이 목소리만 들은 채 상대편을 판단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3막 ‘신뢰게임’은 모르는 사람과 10만원을 주고받는 상황을 가정했고, 4막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비행기 옆좌석에 앉았으면 하는 누군가를 떠올려보았으며, 5막 ‘입법극장-제가 당신 마음의 대리인이라고요?’에서는 관객으로 분한 배우를 기용하여 토론의 촉매제로서 기능하도록 했다.

[2] <토론극장>은 방법론적으로는 사적인 이야기를 펼치기 쉬운 “무대”로서 실험 형식을 취해 관객의 개입을 독려한 반면, 주제면에서는 집단과 관계 내에서의 개인(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자 기획되었다. ‘편 가르기’, ‘다수의 권력’과 ‘개인의 목소리’, ‘타인을 향한 신뢰’, ‘관계맺음의 조건, ‘감정착취’, ‘(자기)돌봄’ 등이 주요 주제이다. 제목 ‘우리_들’에서 ‘우리’와 ‘들’ 사이의 ‘_(언더바)’는 “우리”와 “저들” 사이가 과연 가까워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담았다. 예술적 경험을 통해서 모든 인간관계에서 “건강한” 거리감에 관한 사유가 중요함을 제시하는 것이 <토론극장>의 목적이다.

[3] 브라질 출신의 극작가, 연출가, 연극이론가인 보알은 남미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서유럽식 연극이 그대로 모방되고 상연되는 현실에 강한 회의를 갖고, 억압받는 민중이자 수동적인 관객을 삶의 주체이자 무대의 배우로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두고 1970년대 이 연극을 처음 발표했다. 그의 토론연극(Forum Theater)은 ‘관객-배우(spect-actor)’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열린 구조를 지니게 된다.

[4] 랑시에르에 따르면 “관객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읽거나 보거나 들은 것이 낳은 새로운 가능태들에 의거해 관객이 기존의 것을 변이시키는 조건들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능동적 관객이자 행위자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공동체 집단을 산출하는 매개로서 연극은 교육학 모델을 따른다고 언급한다. 자크 랑시에르(양창렬 역), 『해방된 관객-지적 해방과 관객에 관한 물음』, 현실문화, 2008/2016, pp.2019-222.

[5] 이러한 작업에서 대중이 드러난다는 것은 프로그램의 수행자로서 “동원”되는 차원이 아니라, 대중 각자의 이야기와 그 교류가 작업 안에 담기는 무형의 컨텐츠가 매우 중요하다. 그 내용들이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더라도 예술가와 한 개인으로서 동등하게 만나는 경험, 혹은 개인들의 연대를 드러내는 형태를 통해 관객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6]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을 지향하는 작가는 이러한 프로젝트가 예술의 범주가 어디까지 인지를 질문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크리스탈 퀼트는 예술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기를 기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예술이 더 이상 예술이 되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원문: https://www.tate.org.uk/whats-on/tate-modern-tanks/display/suzanne-lacy-crystal-quilt)

[7] 파블로 엘게라(고기탁 역), 『사회 참여 예술이란 무엇인가(Socially Engaged Art)』, 열린책들, 2013, p.80.

[8] 조주현(일민미술관 학예실장), 「대립을 논쟁으로, 적대자를 상대자로 전환하는 심리 극장」, 『올해의 작가상 2019』, 국립현대미술관, 2019, p.86.

[9] Patricia Milder, TEACHING AS ART The Contemporary Lecture-Performance, 『PAJ: A Journal of Performance and Art』(Volume 33, Issue 1, January 2011), pp.1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