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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ictorial Scene
- 최예술 작업론
‘그린다는 것’의 의미가 무색해진 현대미술에서 젊은 작가 최예슬의 평면작업은 단연 돋보인다. 2010년 졸업학년이었던 작가는 국내의 한 미술기관에서 진행한 드로잉공모전에서 당당히 입상하며 미술계에 입문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증명하듯, 그녀의 작품은 다시금 회화의 평면성(flatness)과 붓질(brush stroke)이 지닌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Having accumulated during the days>(2010) 시리즈나 <Crescendo>(2010)에서 보이는 짧고 굵게 눌러 그려진 파편화된 붓자국의 수없는 겹침은 캔버스의 중심축으로 이동하면서 그 밀도를 더해가고, 이 강렬한 색면 레이어들과 물감이 흘러내리며 이루는 묘한 대조는 감성적인 색감과 더불어 그녀의 회화작업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일종의 언어이자 기호이다. 그러나 모더니스트 회화가 '자기-환원적(self-reductive)'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하고 그 정체성을 마련하였다면, 최예슬 작가의 평면작업은 오히려 무한히 증식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지닌 ‘기본적인’ 미디엄이라고 볼 수 있다.
물질의 적나라함은 얼핏 보면 목적을 잃은 듯 보이나, 나에게는
어디론가 데려가야 할 벗이었다. 이미지의 요소로서 작용할만한
질료의 범위는 설정되지 않은 채, 어느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작가 스테이트먼트에서 등장하는 “물질의 적나라함”이나 “질료의 범위” 따위에서 드러나듯, 작가는 처음부터 질료가 갖는 물질성에 대해 주목하였고, 그 관심이 다만 평면에 머물러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형상을 의도하는 대신 질료가 주는 특성에 주목하는 작가의 태도는 전형적인 미적 감흥을 일으키는 캔버스다는 점에서 다소 모순적이라고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 드로잉작업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종이나 못 등으로 종이 위에 콜라주를 한다거나, 유화물감에 섞어 사용하는 오일을 마치 물감처럼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등 갖가지 실험을 가하면서 종이 위에서 자유로이 유영한다.
최예슬 작가의 이번 전시는 작가의 기존 평면작업의 뉘앙스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페인팅 및 드로잉작업과 더불어 1층 아트리움에서 설치작업을 새롭게 선보인다. 벨벳천과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나무를 수집하여 개방된 공간에 집적시킴으로서 두 소재가 주는 상반적인 물질성 내지는 재료의 특성(부드러움과 견고함, 펼침과 쌓음)을 탐구하고자 기획되었다, 캔버스의 물리적인 한계에서 탈피하여 전시 공간으로의 확장을 의미하는 최초의 제스처이자 시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