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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 맥락이 지워진 공간에 대한 탐색
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큰 규모의 공간사진작업으로 다른 뒤셀도르프학파 사진가들과 더불어 이미 큰 유행과 이슈를 만든 칸디다 회퍼. 국제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의 사진전에 대하여 호들갑을 떨며 작업을 칭송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학부시절부터 도록이나 전시를 통해 작업을 보아왔으나,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나 토마스 루프 등을 포함한 유형학적 사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미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거대한 스케일의 사진이 포착한 공간들은 그 대상이 건물내부이건 도시의 한복판이건 슈퍼마켓이건 항구의 물류창고이건 간에, 정교한 화면구도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심하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 기계적인 차가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퍼의 작품을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사진 속 실제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회퍼의 작업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가 바뀌게 되었다.
2006년 여름, 사뮈엘 베케트가 살았던 도시가 너무 보고 싶어 무작정 더블린에 갔다. 프랑스로 망명을 오기 전에 베케트가 살았다던 집과 동네를 걸어보고, 더블린의 문화예술거리를 거닐며 카페와 바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그가 학업을 마쳤던 트리니티 컬리지의 도서관에서 회퍼의 사진을 보았다. 장서의 방대한 양과 클래식한 도서관의 회랑구조는 첫눈에도 그 아우라에 압도당할 만큼 엄청났다. 비록 그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현재 그 회랑은 사용을 안하는 것 같았다) 수세기 전에 학도들이 책을 펴들고 공부했을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들의 열정으로 후끈했을 도서관 내의 공기가 내 피부에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 이 곳을 찍은 회퍼의 작업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아일랜드 현대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앞두고 2004년 더블린 지역의 유서 깊은 공간을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 11점 중 하나로써, 트리니티 컬리지 도서관의 회랑을 중심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좌우 대칭적으로 1,2층이 장서로 뒤덮인 모습은 그 규모와 건축전통의 아우라가 압도적인 화면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실제의 아우라를 경험한 후 보게 된 사진 속 공간은 역사적인 아우라가 희석되고 공간이 지닌 조형적인 형태가 더욱 다가오는 듯했다.
두 번째로 회퍼의 작품을 본 곳은 파리의 루브르였다. 같은 해 겨울, 루브르를 찾았다가 우연히 회퍼의 개인전이 열린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미술관은 현대적인 감각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전시와 프로모션을 진행하고자 하였는데, 2005년 다빈치코드라는 댄 브라운의 유명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 미술관을 빌려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더불어 현대미술의 다양한 실험을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자 했고, 회퍼의 전시는 사진이라는 미디엄을 수용한 시도로써 당시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시는 관람객이 아무도 없는 루브르의 전시실을 찍은 연작물로, 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명작과 건축만이 남은 모습들이다. 미술관 혹은 박물관이라는 제도적 기관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제반사항, 즉 문화를 판매하는 상업적인 측면(입장료, 입장객, 아트샵과 오디오 가이드 등)이나 명화가 걸리기까지 약탈과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배경이 지워진 사진 속 화면에서는 루브르라는 건축공간만이 오롯이 보여질 뿐이었다.
인간은 본인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루브르에 가서 보게 되는 다양한 층위의 맥락들-예술의 역사, 약탈의 역사-과 순차적인 의례들-입장료구입, 작품감상, 기념품구매 순-에 사로잡혀 그 공간이 주는 공간의 미를 가만히 고찰하고 감상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회퍼의 사진이 다분히 중요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음은 확실하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Seoul
국제갤러리에서 소개된 사진은 2010년 개관한 베를린의 노이에미술관의 공간을 찍은 시리즈이다. 회퍼는 2001년부터 시작된 유수 미술관과 갤러리의 공적인 공간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으며, 이미 로댕의 칼레의 시민 12작품이 소장된 미술관 및 기관을 방문하여 찍는다거나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온카와라의 날짜기록회화들이 소장된 개인컬렉터를 방문하여 작품이 위치한 고유한 공간성에 주목한 작업을 해왔었다.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작업은 노이에미술관이 지닌 역사성에 초점을 맞춘 작업이다. 노이에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리모델링으로도 유명해진 곳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의 총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곳이기에 그 역사성을 지우지 않는 조건으로 미술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회퍼는 그 공간이 지니는 역사성을 되짚으면서 공간을 탐색하는 사진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집트여왕 네페르티티의 두상은 유럽강국의 식민주의적인 역사의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특유의 서구유럽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역시나 회퍼가 보여주는 공간은 역사적 배경이나 맥락이 돋보인다기 보다는, 그 공간 자체의 조형적인 구성이 주는 힘이 더 큰 것 같다. 대칭적인 구조와 화면이 중앙으로 소급되는 소실점은 미니멀한 개념을 사진 속에 부여하고 그 공간이 주는 차분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사적 에세이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