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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적 공간에 대한 오마주
- 이재명 작업론
페인터 이재명은 21세기 도시적 공간에 대한 탐색을 페인팅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기계적 구조물과 현대건축물은 그의 작업에서 마치 동어반복하듯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자 주제로 계속 등장하는데, 그 시초는 건물 파사드와 노란 사다리차를 그리며 수직적 상승이 주는 도시적 미감을 표현한 2006년도 졸업작품<Both 2>에서 이미 찾을 수 있다. 2007년에 제작된 <당연한 결과> 연작은 입체적인 건물의 공간으로 작가의 관심이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며, 건물 실외기를 거대한 구축물의 형태로 표현한 2008년작 <Self-replication>에 다다르면 구조적인 공간에 대한 더욱 진일보된 작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 이후 건물의 파사드 뿐만 아니라 옥상, 지붕, 공사현장 등 도시의 다양한 장면(scene)을 캔버스에 재현하는데, 작가는 몇 가지 특별한 방식을 통하여 도시를 재구성(reconstruction)한다.
이재명의 근작 표면에 그어있는 무수한 연필자국은 언뜻 건축 설계도면의 그것과도 같아 견고한 분석적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의 작품에서는 공간을 해체하고 분해하는 다시점 방식이 사용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근작 <나는 잘보고 있었어>(2011)는 덧대어지고 빗나간 여러 시점들이 작품 내에서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다. 한 화면에 중앙투시, 앙시(仰視) 및 조감(鳥瞰)투시 등 다양한 시점을 수용하면서 작가는 비논리적인 공간을 제시하고 있는데, 작가 스스로 페인팅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국가를 초월한 도시의 여러 장소를 조합하여 한 화폭에 담아내고 있음을 밝힌바 있다. 이러한 다시점과 더불어 <Untitled>(2011) 에서 잘 드러나는 다양한 색채의 평면성(flatness)은 공간의 일루젼(illusion)을 방해하며, 작품을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이중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켜버린다. 또한 과슈와 아크릴을 섞어 만들어진 흘러내림 혹은 번짐효과는 작품 안에 기괴함과 나른함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로써 그의 작업은 작가가 말한 바대로 "대도시의 복잡하고 시끄러운 삶 이면의 공허하고 낯선 장면"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이를 마주하는 우리에게 "그 낯선 이미지를 통해 사회로부터의 일탈감을 느끼고,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상상"을 하도록 한다.
이재명의 회화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재현되는 방식이다. <a pale red dot>(2011) 작품을 보면, 거대한 인공 건축공간에 한 아이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 웅장하고 비대한 공간에 압도될 정도로 작은 아이는 그 존재가 '옥의 티' 마냥 불편하다. 또한 육중한 옥상 배기관과 환기통에 둘러싸여 춤을 추고 있는 남녀 한쌍(<stop puff>)이나 초록지붕 위에서 공을 차는 여인(<Mom. Run!>)은 일반적인 형상과 배경의 이분법적 우열관계를 철저히 배반하는 동시에 장소와 인물의 적절성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재명식(式) 회화에서 도시란 결국 '인간의 창조적 결과물'인 동시에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구조물'라는 이중적인 층위 내에 존재한다. 작가는 이러한 도시공간의 균열과 틈을 포착해서 낯설게 하는 방식을 통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를 권고하며, 오늘도 성실히 화폭에 도시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