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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고리를 만드는 예술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은 ‘왜 우리는 알면서도 믿지 못하는가’이다. 영국의 기후변화 전문가 조지 마셜(George Marshall)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지금 여기와는) 동떨어진 사건을 명시하고 있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경험과 가정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불확실한 장기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 확실한
단기 손실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1 이러한 이유로 기후위기는 신념(conviction)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사실과 수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들을 해석하여 도달한 머릿속의 생각과 굳건한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후변화는 인식뿐만 아니라 공감과 적극적인 태도가 따라와야 한다는 점에서 최근 ‘기후 감수성(Climate Sensitivity)’이 자주 언급되고 한다.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영향을 민감하게 느끼고 행동으로 이어가는 능력이 절실한 시대, 기후변화가 위기이자 재난임을 믿고 연대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예술은 이러한 감수성을 갖추고 기후행동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후 감수성을 깨우는 클라이파이
김기창의 『기후변화시대의 사랑』(2021),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2021),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2020)은 공통적으로 기후변화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현재 또는 미래를 배경으로 기후위기로 의해 달라진 삶의 방식이나 그로부터 발생한 재난 상황에서의 불평등을 목도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인류를 그리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2020년을 전후하여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된 이 문학장르를 클라이파이(Cli-Fi) 즉 기후문학이라 부른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기후 감수성을 깨울 수 있는 방안으로 클라이파이를 꼽은 바 있다.[2]글쓰기는 개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며, 문학은 추상적으로 인식되는 기후위기 이슈를 지금 여기의 사건으로 구체화시키며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2022년 만아츠 만액츠의 프로젝트 《New Play, New Connection, New Normal》 중 사운드아티스트 윤수희의 <앓는 소리들>은 클라이파이의 효용성을 직접 보여준 사례이다. 기후위기가 더욱 심각해진 미래를 배경으로 한 네 편의 이야기와 네 편의 사운드 트랙으로 구성된 이 작업은 기후 문제가 지닌 심리적인 관점을 텍스트 및 사운드를 기반의 소규모 공연으로 풀어냈었다. 기후위기라는 이슈가 감각적이고 사적인 경험으로 치환되는 방안으로서 작가는 텍스트와 사운드가 결합된 ‘허구적 서사’를 고안한 것이었다.[3] 이처럼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 가능하고 호소력 있게 어필하는 장치다. 특히 기후위기처럼 추상적이고 회피하고 싶은 사안일수록 더더욱 이러한 예술적 장치가 필요하다.
릴레이 액션은 이러한 서사적 가능성에 영감을 받아 문학적 글쓰기와 만화적 표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확장되고 파생될 수 있는 온라인 기반의 예술활동을 기획하게 되었다. 김다빈이 웹사이트를 개발 및 구현하고 만아츠 만액츠가 콘텐츠를 기획한 <기후위기 책 만들기>는 클라이파이 주제의 책을 만들고 진열하는 일종의 디지털 작업장이자 서재이다. 시, 장편 혹은 단편 소설, 인용글, 메모 등 각자의 방식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책의 커버 이미지를 생성하고 사운드트랙을 선정하는 등 디지털 상에서 책을 제작하는 전 과정을 쉬운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 프로젝트에서는 <클라이파이 글쓰기 및 사운드디자인> 워크숍을 오프라인에서 선행하였다. 2달 넘게 이어진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은 글쓰기와 사운드 작업을 중심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각자의 예술적 상상력을 풀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는 온라인 서재의 구조를 만들고 첫 번째 칸을 채우는 디지털 책들로 탈바꿈되었다.
드로잉 릴레이, 연결과 연대의 실천
한편 그린코믹스의 〈ChatGreenPT〉는 예술가와 참여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활동에 주력하였다. ‘챗지피티(ChatGPT)’에서 이용자가 프롬프트를 넣으면 AI가 응답을 하듯, 예술가와시민이 기후위기에 관한 질문과 응답의 방식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도출된 이야기를 웹툰 형식의 드로잉으로 이어가는 작업이었다. 첫 번째 파트인 [시민→예술가]에서는
예술가가 만든 기후위기에 관한 질문(설문)에 시민들이 응답한 것을 수집하여 예술가가 웹툰으로 제작하였다. 두 번째 파트인 [예술가→시민]에서는 예술가가 제작한 웹툰의 마지막을 시민들이 직접 드로잉 하여 서사를 마무리해 보는 것이었다. 시민의 생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예술가의 드로잉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거나 참여자의 개입에 의해 서사가 마무리되는 형식은 예술가와 참여자 사이의 협력적 관계를 재설정하는 프로젝트의 취지를 잘 보여준다.
서사의 위기, 이야기를 통한 디지털 커먼즈의 가능성
앞서 논의한 것처럼 두 가지 예술작업을 통해 릴레이 액션은 텍스트, 사운드, 드로잉을 기반으로 한 예술활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책’과 ‘웹툰’의 형식을 차용했다. 한편 예술가와 시민 참여자가 주고받는 릴레이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연대의 과정을 실천적으로 모색하고자 했다. 텍스트를 쓰거나 읽고, 소리를 내고 듣는 행위는 서사적 상상력을 만들어내고, 궁극적으로 ‘기후위기’라는 공통의 주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취지를 담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나누는 창구로서 웹과 SNS 등 온라인 공간에 주목하였다.
오늘날 플랫폼이 점차 사유화되면서 초창기 웹이 가진 개방과 공유의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공유하고 강박적으로 타인과 교류하면서도 고립감을 느끼는 있지 않은가?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서사의 위기』(다산북스, 2023)에서 그 이유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처럼) 서사적 연결 없이 일시적이며 금방 다른 정보로 대체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다시 말해 정보와 데이터로 넘쳐나는 디지털화된 오늘날,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덧붙여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고 말한다.
“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animal narrans)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4]
어쩌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주고받는 행위에서부터 기후행동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는지, 본 프로젝트는 비대해진 온라인 세계와 서사의 위기 시대에 이야기가 가진 원초적인 힘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커먼즈의 가능성을 묻고자 한다.
[1] 조지 마셜(이은경 옮김), 『기후변화의 심리학: 우리는 왜 기후변화를 외면하는가』, 갈마바람, 2018, p.306.
[2] 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최된 <클라이파이 글쓰기 및 사운드디자인>(2022.12.22.-2023.3.23.) 워크숍 1강에서 <기후 감수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박혜진 문학평론가에 의해 진행되었다.
[3] 윤수희 작가의 <앓는 소리들> 사운드트랙과 텍스트는 만아츠 만액츠 웹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10000arts10000acts.com/project/the-groaning-sounds/
[4] 한병철(최지수 옮김), 『서사의 위기』, 다산북스, 2023, pp.136-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