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미래도시를 잉태하는 장소로서의 건축적 공간
- IVAAIU CITY ‘Roadscape MMXXX’ 작업론
도시의 경험은 도로에서 시작된다. 19세기 도시 산책자 ‘플라뇌르(flâneur)’는 스펙터클의 도시를 관망하며 거리를 거닐었다. 20세기 고속도로와 고가도로의 구축은 메가시티에 시간의 축적과 공간의 확장 가능성을 담보하며 ‘속도의 미학’을 전파했다. 그리고 ‘마이카 시대’가 열리며 개인들은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자율주행의 도로와 마주한다.
모빌리티(mobility)는 일차적으로는 교통 및 운송수단, 이동의 다양한 유형을 일컫는다. 그러나 새로운 이동수단과 교통시스템은 도시의 모습을 현격히 바꾸고, 이동의 주체들이 세상을 경험하고 인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IVAAIU CITY는 새로운 모빌리티로서 자율주행 기술에 주목하고, <Roadscape MMXXX>를 통해 2030년 도래할 새로운 도시의 상(像)을 제안한다. 작업은 산업기술의 현재와 향후 전망, 크리에이터들의 상상력, 그리고 진행과정에서 수집된 관객의 피드백이 만나 완성되고, 미래도시의 모빌리티 환경에 관한 그들의 청사진을 건축적 공간인 ‘컴플렉스스트럭처(Complex Structure)’에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실험적이고 비평적인 장소
이 건축적 공간은 도로환경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다룸으로써 통합된 시스템 안에서 인간과 차량, 로봇이 상호작용하는 곳이다. 차량이 다니는 도로, 사람이 다니는 보행로, 로봇이 머물 수 있는 중앙의 코어, 총 3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관객은 공간을 거닐며 미래의 도로 생태계를 만들 주체들의 존재를 인지한다. 한편 키네틱 월, 라이트 애니메이션과 이머시브 사운드, 증강현실(AR) 등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이동수단의 다변화, 교통 움직임의 흐름과 패턴, 대기질과 기후 및 시청각 환경 등 근미래의 도시를 경험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미래의 도시를 그리며 이러한 건축적 공간을 구상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20세기 이후 건축가와 예술가들에 의해 실험적인 장소로서 제시된 ‘파빌리온’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적인 파빌리온은 왕가를 위한 전통적인 공간도, 예술작품이나 상품을 전시하는 곳도 아니다. 오히려 관람자와 시선들이 전시되며 사람들이 만나고 환경을 반영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따라서 관객은 전통적인 관람자에서 벗어나 건축공간을 경험하면서 작품을 구성하는 퍼포먼스의 주체가 되었다. 이처럼 파빌리온은 공간 그 자체로 관심을 돌리고 기존의 시스템을 환기시키며, 나아가 도시 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실험하고 잉태하는 장소로서의 건축공간이 되었다.[1] 한편 사회적 맥락에서부터 고립된 “순수하고 신비한” 예술의 개념과 대립되는 오브제로서 건축은 신체성과 생산방식, 그리고 사회적 의미가 촘촘한 도시의 측면에서 비평적이거나 분석적인 언어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리하여 1960년대 이후 예술의 영역에서도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의 산업재료와 공간의 작동방식, 장소들의 배치 등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건축적 공간작업이 지속되었다.[2]
관계적인 유기적 도시
이 건축적 공간의 모든 요소들은 연결되어 일종의 신호를 주고받는 통합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환경을 구현하고 있다. 바닥면 중앙에서부터 바깥으로 뻗은 애니메이션 라이팅은 도로 바닥의 광섬유 센싱 시스템으로, 도로 환경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또한 중앙의 충전 시스템은 도로 전반에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원격으로 공급한다. 한편 기후 데이터를 수집하는 움직이는 구조체는 도로의 환경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여기서 비/물질적 움직임은 미래 모빌리티 환경의 이동성과 연결성을 가시화하고, 유기체와 같은 상호작용과 연동된 시스템으로서의 도시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일본의 메타볼리즘(Metabolism)이나 영국의 아키그램(Archigram)에서 보여준 ‘유기적 도시론’을 떠올리게 한다. 1960년대 자동차가 가져온 새로운 속도감과 이동성은 기존의 휴먼 스케일을 무효화시켰고 전례없는 규모의 건축과 도시의 출현을 요구했다. 건축가들은 이러한 ‘메가스트럭처(megastructure)’를 비판하고 미래의 도시에 유토피아적 비전을 담고자 했다. 그들에게 도시란 계속 변화하는 생물학적인 유기체로서, 도시를 관계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소통과 구조의 문제를 담아내고자 했다.[3] IVAAIU CITY 역시 이러한 상상력과 비판적 관점을 더해 21세기 미래 도시공간 속 도로의 비전을 제시한다. 여기엔 사람과 자율주행 자동차, 로봇과 드론 등 새롭게 출현할 모빌리티의 주체들이 공존하고, 이에 맞춰 도로의 인프라스트럭처는 데이터 전송의 허브이자 차량 충전 기능도 포함되는 등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된다. 또한 교통시스템 역시 수집된 데이터 및 도시환경에 끊임없이 반응하고 네트워킹하며 상호작용한다.
‘컴플렉스 스트럭처’ 구조물 곳곳에는 삼각형 구조체가 베이스로 사용되는데, 컴퓨터 그래픽의 기초가 되는 트라이앵글 메쉬(triangle mesh)에서 착안한 것이다. 비물질적인 컴퓨터 언어가 가상의 물리적인 형태로 구성되는 것처럼,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풍경이 실제로 구현된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실제 현장에 설치된 AR 마커를 통해 가상현실 속 모델링의 이미지가 실제공간에 오버랩되는 순간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경험적으로 보여준다. 산업적 소재와 반영적인 빛의 복잡성을 지닌 구축적인 형태는 환영적 공간을 제시한다. 여기서는 꿈을 실제처럼 만들고, 현실을 꿈처럼 보이게 하는 도시경험의 일부로서 공간이 탄생한다.[4]
- 제로원데이 아카이빙도록 수록글 (2021)
[1] 건축사학자 베아트리즈 콜로미나(Beatriz Colomina)에 따르면, 실험적인 장소로서의 파빌리온 사례로 미스 반 데어로에(Mies van der Rohe)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이 있다. 상품과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파빌리온의 기능이 내포하는 상품화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비워 둔 공간 그 자체만을 제시하는 전략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에는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의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건축가들을 통해 동시대적 실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Beatriz Colomina, “Beyond Pavilion: Architecture as a Machine to See,” Birgit. Pelzer, Mark Francis and Beatriz Colomina, eds., Dan Graham: Beyond (London: Phaidon Press, 2001), p.203, p.205.
[2] 예술의 영역 안에서 건축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개념미술 작업에서 광고, 정보 그리고 도시의 관료체계로 인해 발생한 권력의 영향을 위치시키는 담론으로서 건축이 종종 차용되었다. 제프 월은 이러한 예술가들로 그레이엄(Dan Graham), 뷔렌(Daniel Buren), 바이너(Lawrence Weiner), 코수스(Joseph Kosuth) 등을 들었다. Jeff Wall, “Dan Graham’s Kammerspiel,” “Dan Graham’s Kammerspiel.” Alberro, Alexander. ed., Conceptual Art: A Critical Anthology, The MIT Press. 1999, p.507.
[3] 도시적 유기론에서는 가변적이고 관계적이며, 도시가 지닌 동적 움직임이나 시간성을 포함한 상황 형성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정연심, 「유기체로서의 도시와 유토피아 거주지」, 『현대공간과 설치미술』. A&C, 2014, pp.237-238.
[4] 많은 도시 이론가들이 환영적인 공간을 현대도시의 공간경험과 연결시키고 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아케이트 프로젝트(Das Passagen-Werk)』에서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의 수정궁에 대해 “전체가 마치 기적과 같아 사고력보다는 상상력을 더 크게 움직이게 한다. ‘내가 이 공간의 광경을 어떤 동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지 말의 신중한 절약 때문일 뿐이다’…. 그것은 바로 한밤중의 태양 아래서 꾸는 한여름 밤의 꿈이다” 홍준기, 「발터 벤야민과 도시경험-벤야민의 도시인문학 방법론에 대한 고찰」,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12, 1 (2010), p.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