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0 ARTS 10000 ACTS
공유도시를 향하여
당신은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가? 어떤 물적 토대 위에서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 도시의 사회기반시설인 인프라(infrastructure)는 근대도시가 만들어진 역사와 함께 지금껏 효율성과 성장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왔다. 하천이나 갯벌을 메운 땅 위로 공장이나 아파트를 짓고, 산을 뚫거나 다리를 만들어 속도의 모빌리티를 완성했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도시계획에 대한 비판은 기후위기의 시대에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UN이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17개의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2030년까지 인류가 지켜야 할 가치를 제안한다. 여기서 인프라의 구축 및 개선으로 자원 효율성을 증진할 수 있다고 본다. ‘혁신과 인프라 구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생산 및 사회기반시설과 주택 문제에 청정에너지 기술을 적용한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포용적이고 복원력 있는 지속가능한 산업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바탕으로 한다. 기술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고 자원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는 아이디어가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천, 자연과 인공의 교차점에서
이러한 SDGs의 아이디어는 현대판 ‘대중의 아편’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경제성장과 환경 부하(기온 상승 1.5도 미만 억제)의 디커플링은 어려우며, 환경을 지키며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녹색성장’은 현실도피라고 반박한다. 그들은 수탈, 착취, 대가의 전가, 희생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제국적 생활양식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계라고 말한다.[1] 실제로 그간 도시 인프라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다른 많은 것들을 착취하거나 배제해 왔다. 예를 들면 복원 및 정비된 도심 하천에 레크리에이션용 인위 시설을 과도하게 도입하거나, 외래종이나 품종 개량한 원예 및 조경용 식물을 많이 심은 사례는 모두 인간 중심적 도시계획을 보여준다. 결국 도시 인프라란 여전히 인간 외의 존재를 약탈하고 배제하는 무대인 것이다.
본 프로젝트에서 주목한 노원은 1980년대 후반 주공아파트를 집중적으로 만들면서 베드타운(bed town)으로 조성된 도시로, 서울 시내와의 연결을 위한 모빌리티가 관건이었다. 노원에는 중랑천, 당현천, 우이천, 묵동천 4개의 하천이 흐르는데, 물길을 따라 교통이 발달하고 주요 시설이 만들어진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직강화한 하천은 꾸준히 하천정비사업과 정기적 준설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도시계획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향후 더 나은 도시 모빌리티를 위해 부지런히 “진화”하고 있다. 실제로 중랑천을 중심으로 동부간선도로 '창동~상계' 방면 지하화와 수변공원 조성을 계획하고 있는데, ‘동북권의 신도심 육성 프로젝트’ 일환으로 노원 월계동-강남 대치동 간 통행시간을 30분에서 10분대로 줄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2]
이처럼 하천은 인간 중심적 도시계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시 인프라지만 그 너머의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노원의 하천에는 42종의 조류, 16종의 어류, 114종의 식생과 수달이 서식하고 있고(중랑천환경센터 조사 2021년 기준 생태현황), 인간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자생력과 회복력을 갖추며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하천이 지닌 양면적인 측면을 통해 인간 중심적 도시를 전유하는 예술적 상상력을 가시화해보고자 한다.
인간 중심적 도시를 전유
제3의 장소는 노원의 하천을 중심으로 연구 프로젝트와 두 가지의 예술 작업으로 구성된다. 고윤지, 최희진 초청 연구자에 의해 진행된 도시감각 워크숍은 자전거의 속도와 소리를 통해 도시를 재감각하는 현장연구의 일환이자 예술작업의 선행연구로서 진행되었다. 차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를 느리게 사유하고 청각적 요소로 재구성해 보는 시간은 자본주의적 도시가 지향하는 성장과 효율에
반하는 활동이었다. 이어 IVAAIU City와 조재영 작가는 인간 외의 존재를 재인식할 수 있는 야외설치작품 중심의 작업을 선보였다. 이 작업들이 위치한 당현천은 중랑천으로 합류하는 물줄기로, 작은 인공섬들이 하천의 가운데 위치하고 속도의 모빌리티를 보여주는 당현고가도로 아래를
흐른다. 하천변에 구민들이 애용하는 산책로가 이어지며 중랑천환경센터와 시립노원청소년센터 등 지역의 생태계를 연구하고 공동체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시설이 위치하여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IVAAIU City는 당현천의 인공섬 내부와 하천변의 식물을 서로 연결하고 교류하는 방안을 타진하기 위해 ‘생태촉진 구조체’를 제안하였다.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인공섬이 일정 부분 격리되어 형성된 점에 주목하여, 인공섬 내외부의 식생 간 전기적 신호를 포착하고 그 활성화 정도를 데이터 시각화 영상을 통해 실시간 확인하도록 하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식물 간의 연결과 교류를 가시화시킴으로써 인간 외 존재들의 자생력과 도시 속 인간-비인간의 얽힘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조재영은 설치작품과 연계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인간의 이성 너머 존재하는 무의식을 감각하며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서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달의 변화에 따라 여성의 생리주기가 변하는 것처럼 인간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다양한 영향관계 하에 있다. 하천을 구성하는 다종다기한 생명체들의 존재를 감각하기 위해서 작가는 인간 무의식 너머 통합적인 인식으로 이행하기를 권고한다.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의 분절적인 사고 대신에 분리되지 않는 전체로서 주변과 만나는 경험을 나누면서, 공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제3의 장소, 교류와 연결의 장소들
도시기반시설은 ‘사회적 인프라’ 관점에서 설명되기도 한다. 학교, 놀이터, 지하철, 동네 식당, 텃밭, 교회, 공원처럼 지역적
교류가 빈번히 일어나는 장소이거나 카페, 식당, 이발소, 서점 등 상업시설에서 사람들이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편하게 들러 시간을 보내는 곳을 말하는데, 이곳들은 모두 자발성을 기초로 한 교류와 연결을 만들어내며 ‘사회적 평등’과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소들이다.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이러한 곳들을 ‘제3의 장소(Third Place)’라 칭하였다. 공통된 관심사나 활동을 통해 면식/비면식의 타인들과 연결되는 친숙한 공공장소이다. 이곳은 ‘제1의 장소(first place)’인 집과 ‘제2의 장소(second place)’인 일터 외에 커뮤니티의 연결을 강화하고 상호소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3]
본 프로젝트는 개발과 성장, 효율성을 중시하는 인간 중심적 도시체계의 대안으로써 주민들에게 익숙한 하천을 대상지로 삼아, 대면/비대면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머리를 맞대면서 대안적 도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의 워크숍에서부터 예술가들의 야외 설치
작품, 사운드 및 낭독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는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기존 도시 인프라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산책, 명상, 운동, 만남의 장소로서 널리 이용되는 도시 하천에서 진행된 제3의 장소 프로젝트는 일상의 공간이 잠시나마 타인과 인간 이외의 존재들을 겸허히 마주하는 공통의 무대로 탈바꿈되었기를 바라본다.
[1] 대표적으로 일본의 철학자 사이토 고헤이가 있다. 그의 저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다다서재, 2021)을 참고할 것.
[2] 이소정 기자,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연내 착공, 2028년 개통’, 동아 비즈N, 2023년 3월 28일
[3] 에릭 클라이넨버그(서종민 옮김),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의 힘』, 웅진지식하우스, 2019,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