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테이블과 큰 물음들
성남 원도심과 개인을 가로지르는 것들
1.
‘공공예술’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아마도 기존의 공공예(미)술이 지닌 태생적인 한계와 이로 인한 조형어법이 지닌 편협한 논리에 기인할 것이다. 공공장소를 점유하며 존재감을 뽐내는 거대한 조형작품이나 시민을 동원하는 매뉴얼화된 화법의 예술들에서 ‘공공’은 다수의 시민이 호응하고 접근가능한 오픈스페이스에서의 예술 정도로 취급된다. 본인이 하는 예술프로젝트 앞에 ‘공공’이라는 단어를 가급적 붙이지 않는 이유이다.
화이트큐브 밖 거리로 나온 예술은 공공장소과 공적영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외부환경에 자유롭지 않다. 표현의 제약과 까다로운 설치조건, 기관-행정-주민-예술가 등 여러 주체들의 엇갈린 의견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장소사용을 허락받기까지의 무수한 절차나 날씨와 장소 등 외부환경으로 인한 기본예산 단위가 높은 점, 작품훼손 문제와 시민의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인해 공공예술은 지금껏 예술가(개인)보다는 관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따라서 “계몽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자 보편적인 표현방식 위주의 하향평준화를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술세계를 단지 장소와 대상을 넓힌다는 나이브한 생각으로 공공예술에 접근한 다수의 예술가들의 태도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도시를 재생하고 삶을 연구하며(리빙랩),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정책 하에서, 일상과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의 방법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의 예술이 만나면서, 2010년대 전후 공공예술은 관심과 변화의 중심에 있다. 자본과 관심이 몰리는 이 예술영역에 본인 역시 2017년부터 자연스럽게 발을 담그게 되었다. 그 이후 실제 현장에서 몸소 겪은 바는 공공예술이 그 잠재성을 충분히 가졌다는 것과 동시에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 그러한 경험의 정점에는 2018년부터 21년까지 성남 원도심에서의 마주한 예술이 자리한다.
2.
고백하건데 아파트에 살기시작한 초등학생 이후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한 애착이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학창시절 대부분의 동선은 ‘학교-집-학원-집’의 무한루프였고, 친구들과 놀거리는 동네가 아닌 외부에서 찾았었다. 이런 생활은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졌다. 2016년 이후부터 화이트큐브가 아닌, 도시의 유휴공간에서 예술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골목이, 거리가, 고가하부가 내 눈앞에 보였다.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도시의 틈새에서 흥미와 재미, 예술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 2018년 우연한 기회에 마주한 성남의 원도심에서 ‘공공예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근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2018년에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입주예술가를 통해 지역과 기관을 알게 되었고, 2019년 여러 타이밍이 만나 태평동의 빈집에서 예술프로젝트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과 21년, 2년동안 태평공공예술창작소 입주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창작지원 레지던시와는 달리 ‘공공예술’ 창작을 지원하는 공공예술창작소에는 ‘동네’라는 전제조건이 필수로 들어간다. 그러나 동네를 구성하는 주민은 생계와 생존 앞에서 예술의 ‘여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니 예술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편이 맞겠다. 효용과 실리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지닌 힘은 단번에 설명이 불가하다. 지속적으로 직접 경험하고 느껴봐야 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삶은 너무 빠르고 시간이 부족하지 않은가? 동네와 지역 주민이라는 특정 대상과의 관계맺음이 어색하고 낯선 것은 입주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삶에 개입해야 하는 과정에서 “현타”가 온다. 환경의 제약이나 주민들이 저조한 반(호)응으로 예술의 저자성(authority)을 때로는 내려놓아야 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작업의 맥락을 잡지 못하고 “예술 서비스”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생긴다.
주택 사이 좁은 골목에 위치한 창작소는 이미 동네 주민들의 삶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그 전에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주민과 예술가라는 두개의 주체 사이에서 기관의 역할이 좀 더 필요하다. “예술 전에 삶이 먼저”인 이곳에서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삶에 개입하라는 기관의 취지는 무리한 요청일 수 있다. 2년 후면 창작소를 떠나는 입주작가들이 아니라, 기관이 먼저 열린 자세로 지역의 삶과 예술을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통의 작은 창구를 조금씩 벌리려는 시도가 쌓이지 않는 한 마음이 통하기는 어렵다. 통성명 없이 불쑥 찾아오는 방문은 제아무리 의도가 선하더라도 폭력이 될 수 있다. 동네 골목 안에 위치한 창작소는 여전히 “섬”과 같고, 예술가들에게는 “무덤”과도 같다.
3.
처음 2년간 성남 원도심에서는 입주예술가들의 시도와 시행착오, 도시개발정책의 충돌, 그로인한 주민들의 갈등, 창작소 운영에 대한 재단의 고민과 흔들리는 방향성 속에서 철저히 외부인으로서 이 상황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19년 태평동의 빈집 6채에서 약 15일간 개최된 프로젝트 <사라지지 않는 1>를 진행하던 중, 주민의 반응 중 한 피드백이 한 뇌리에 꽂혔다. “가난한 동네를 볼거리로 만드는 것인가?” 예술을 통해 지역 관광지화를 도모하는 것은 공공예술의 흔한 논란이기도 하다. 주민의 삶의 문제를 저버린 예술이, 동네에 예술을 도입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은 날카롭고 진지한 물음이다. 이후 입주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과연 어떠한 식의 개입이 필요한지, 아니면 개입을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는 창작소에 입주하면서 섣불리 어떤 행동을 하기보다는, 이 지역이 어떤 곳인지 주민들의 삶이 어떠한 지를 이해하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함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도시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관점은 두가지 축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현상과 대상. 도시의 어떤 현상을 바라볼 것인가, 그 표본(대상)을 누구로 삼을 것인가이다. 첫해에는 이 지역의 주요 갈등 원인이 되는 도시개발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원도심이 형성된 광주대단지 시절부터 현재까지 지역을 살고 있는 주민, 특히 노령기 여성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협력 예술가팀과 함께 기획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시적인 관점으로 지역을 이해하는 첫해를 보내고, 이듬해에는 1인가구 문제를 청년세대에 집중하여 풀어나가 보기로 했다.
입주 1년차에는 도시개발사라는 현상을 노령기 여성을 대상으로 알아보았다면, 2년차에는 1인가구 현상을 20-30대 청년으로 한정함으로써 보다 다면적으로 도시를 이해해보고자 했다. 여성이나 1인가구는 태평동에서 오랜 시간 소외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가부장적인 도시개발사에서나 정상가족의 범주에서 밀려난 주체들이었으나 언제나 동네를 구성하는 주요 구성원이었다. 그리하여 협력 예술가들과 더불어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지역을 이해해보고자 하였다. 협력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인터뷰, 워크숍, 사운드 퍼포먼스의 방법론을 차용하여 그들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만들었다. 협력 연구자와 더불어 지역의 기초조사와 사회인식 설문조사, 문헌 및 기사 등을 찾고 텍스트로 정리 및 연구서를 발행했다. 그렇게 조금씩 지역을 이해하는 지표들이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원호X가천프로젝트팀, 인터뷰 프로젝트 <여기와
지금이 구별되지 않는 곡면>, 33min 4sec, 2020-2021
강지윤, 사운드퍼포먼스 <숨>,
2채널영상, 7min 45sec, 2021
4.
도시는, 지역은, 동네는, 삶의 장소는 외부환경 변화와 구성원들의 화학반응을 통해 계속 부침을 겪는다. 공공예술 역시 예술을 둘러싼 이러한 요소들에 기민하게 상호작용해야 하는 예술이다. 매순간 삶의 여러 조건들과 소통하면서 반응하는 과정 자체가 이 예술의 주제이자 결과물이 된다. 비루한 예술로 그들의 삶에 관하여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때 종종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주민 커뮤니티와의 소통에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처럼 참여자들 사이의 오해와 케미의 문제가 프로젝트를 훼방 놓기도 한다. 서로에게 느슨한 연대와 신뢰를 쌓기에는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감염병의 장벽이 높기도 했다.
그래서 2년간의 프로젝트 과정은 일단 조각난 상태로 웹사이트에 산만하게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2개의 영상과 워크숍 일지들, 참여 주민들과의 대화와 낭독의 흔적들, 그리고 텍스트 원고가 온라인 상에 흩어져 있다. 미완의 프로젝트로서 이 플랫폼에 두서없이 쌓인 자료들은 삶과 닮아 있다. 서로가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성남 원도심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각각의 조각은 협력 예술가와 연구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접한 태평동의 다양한 에피소드이다. 그것들은 이 지역의 공동체, 도시개발정책, 주민들의 기억과 삶을 비추고 있고, 다양한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언젠가 성남 원도심의 ‘지금-여기’가 읽힐 기회가 생길 때 꺼내 쓸 요량으로 아카이브를 만들며, 유기적이고 유동적인 삶의 모습과 닮아 있는 본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점쳐본다.
“예술이 스튜디오 생산의 바깥으로 이동하여 일종의 공동체 과정이나 혹은 제도와의 협상이 될 때, 예술이 사회의 동학에 응답하고 타자의 필요에 접근해야만 할 때, 그것이 본질적으로 협업적 성격을 가질 때, 혹은 그것이 타 분야 전문가에게 의존할 때, 예술은 일종의 좀 더 열린 유동적인 과정이 된다.”
- 메리 제인 제이콥, 수잔 레이시(이영옥·김인규 옮김), 『지형 그리기: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문학과과학, 1995
<작은 테이블과
큰 물음들> 프로젝트 웹사이트 (주소: https://smalltablebigquestion.cargo.site/)- 성남문화재단 공공예술창작소 2기 자료집 수록글(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