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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좌표에서 해방되는 과정의 예술
- 글로벌 에일리언(Global Alien)의 세 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조영주는 동시대의 몸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을 고민하며 관객과 감각적 경험을 나누는 것에 주목해 왔다. <꽃가라 로맨스>(2014)나 <DMG:비무장 여신들>(2015)처럼 50-60대 중년여성들과의 댄스필름 시리즈에서부터 <꼼 빠니>(2021)나 <콜레레>(2022)와 같이 돌봄의 이슈를 보여주는 근작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퍼포머티브한 움직임을 통해 그들의 몸이 어떻게 (지역)사회 및 타인과 관계 맺으며 보여지고 작동하는지 포착한다. 때로는 “뽕끼” 가득한 춤사위로, 때로는 서로를 매만지는 마사지의 행위로, 때로는 격렬한 격투와 애무를 넘나드는 신체적 접촉의 형태로 말이다. 개인들의 역동이 자리한 작업 속 정형화되지 않은 몸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감각할 수 있을까?
‘여성’이자 ‘작가’로서, 서구 사회에서 ‘이방인’이자 ‘동양인’으로서, 한국에서 출산 및 육아를 병행하며 ‘엄마’로서 작가 본인이 몸소 겪은 수많은 라벨링(labeling)의 경험처럼, 우리(그리고 작업에 등장하는 퍼포머, 관객과 주민, 혹은 작가)는 사회적 정체성이라 불리는 좌표들에 의해 규정된다. 이처럼 하나의 몸을 수놓는 좌표들을 여실히 드러내고 그들의 몸을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영토의 차원으로 해방시키는 경험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는 작가의 작업에서 매우 핵심적인 구조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회적 경계들을 인식함과 동시에 그 프레임을 넘나들 잠재성을 발견한다. 본고에서는 조영주 작가의 현재 프랙티스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 근간이 되는 아티스트 그룹 활동을 살펴보려 한다. 2006년부터 10년 넘게 활동해 온 국제미술그룹 ‘글로벌 에일리언(Global Alien)’이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다문화 예술가들이 함께 국가⋅문화⋅언어⋅계급적 경계(border)로부터 생겨나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표면화시키고, 그 차이를 직면하면서 시작되는 연대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 글에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된 전략을 세 가지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적 영토를 공유하기
우선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의 초기작 <Exchanging T-shirts)>를 살펴보자. 2007년 쌈지에서 첫 선을 보인 후 2008년 베를린 <Congress of Culture> 전시에서 재발표한 작업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관객이 남긴 옷과 본인의 옷을 바꿔 입고 그 티셔츠 위에 이주와 이동을 의미하는 ‘Final Destination’ 등 문구를 선택하여 인쇄하였다. 피부색과 체형에 따라 각양 각색인 몸의 외피에는 인종과 국가, 종교 및 문화, 계급 등 수많은 코드가 새겨져있고 나와 타인을 사회 안에서 구별짓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누군가의 피부에 닿았고 체취가 담긴 셔츠를 통해 다시 내 피부로 느끼는 것은 사적이고 내밀한 차원에서의 만남이다. 본 작업은 사회적 인식 차원에서 피부가 지닌 경계와 구별의 지위를 허물어 낸다.
인간의 피부는 우리 몸의 경계선이다. (..) 그러나 피부는 오직 경계만을 뜻하지 않으며, 혹은 실질적으로 전혀 경계가 아니다. 피부로 감각하고 숨을 쉬고 땀을 배출하면서 피부는 주변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기관이다…
Skin is the borderline of our body. (...) But the skin is not only a border, or actually not at all a border, it is an organ that connects us with the environment, we sense with the skin, we breathe with skin, we transpire…
- 『Global Alien』, 2008, p.18
글로벌 에일리언의 작업에서는 유학생,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보트피플(난민), 1인 시위자 등 국경을 넘고 제도를 이탈한 몸들이 끊임없이 소환된다. 그러나 그들을 (소수자로서) 대상화시키지 않으려는 부던한 노력은 마치 티셔츠를 교환하는 방식과 닮아있다. 관객(의 몸)을 작업 안으로 직접 끌어들여 그들의 몸과 맞닿도록 한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규정된 일률적인 좌표들 속에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다채로움(또는 복잡함)을 지닌 개인으로서 그들을 감각하는 것이다.
언어의 안과 밖을 경유하기
앞서 작업 사례가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경계와 그 개방을 논하였다면 두 번째로는 언어에 관한 실험들이다.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모인 만큼 언어가 가진 문화적 다름은 다양성을 넘어 언어가 가진 일종의 권력과 배제의 속성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2008년 <Congress of Culture> 전시가 진행된 쿤스트라움 크로이츠벡/베타니엔(Kunstraum Kreuzberg/Bethanien)은 베를린에서도 터키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곳에 위치하며, 멀티컬처를 상징하는 곳이다. <Oral Exam> 작업은 영어듣기 평가처럼 총 12개의 질문이 메가폰에서 출제되는 형식을 취한다. ‘개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친구인가?’, ‘당신은 식당에서 팁을 남기는 편인가?’, ‘10대가 용돈을 받는 것은 당연한가?’ 등의 질문은 생활 방식과 문화권, 종교적 배경에 따른 답변의 다양성을 열어놓는다. 그러나 영어로 이해하고 답해야 하는 소통 방식은 언어가 지닌 이중적 면모, 다시 말해 소통과 배제 혹은 고립을 보여준다. 2010년 <The Power of the Spoken Word> 전시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언어가 가진 권력적 속성을 논했다.
노예에게 주인의 언어는 생각과 감정을 서로 공유하는 소통의 매체가 아니라 그에 복종하고 따라야 하는 명령과 지배의 수단이다. 이민자나 소수자들은 주류사회의 언어를 배우도록 요구받는다. 주류 사회의 언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사회 통합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이들의 체류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할 만큼 중대한 결핍으로 여겨진다.
- 김남시, 「언어, 경계, 지배, 차이」, 『Global Alien-The Power of the Spoken Word』, 2010, p.3.
한편 “언어가 가지는 이러한 한계 혹은 장애를 예술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아 일종의 글로벌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한 작업도 전개되었다. 2012년 미국에서 개최된 <Rebus New York City-Reoccupy Language in Urban Space> 프로젝트에서는 음성언어를 소거하고 그 자리를 제스처와 드로잉으로 대체해 보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들은 거리를 돌며 ‘뉴욕에서 완벽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관한 그림 답변을 수집한 후, 전시장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마스크를 쓴 채 드로잉이나 제스처를 통해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지 각자의 방식으로 소통하도록 하였다. 2011년 미국에서 개최된 <희망과 실패: Investigating the American Dream>는 최면술을 통해 ‘아메리칸드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젝트였다. 무의식 상태의 몸에서 발화되는 언어를 통해 한낮 꿈에 지나지 않는 ‘자유’와 ‘성공’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경유하는 과정을 가졌다.
바디 스크리닝 (Body Screening)
영화, 방송, SNS 등 다양한 미디어의 스크린 너머로 우리의 몸은 지속적으로 소비된다. 블루 스크린을 이용하고 전시장을 촬영장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글로벌 에일리언의 작업에서 여러 차례 활용되던 전략이다. 2007년 쌈지스페이스에서 개최된 <Freedom of Speech> 전시는 방송 시스템을 아주 적극적으로 차용한 사례이다. 전시공간 일부는 영상 프로덕션을 위한 녹색의 블루 스크린이 되었고, 측면에는 촬영 중인 참여자의 배경이 변환되어 영상으로 재생되었다. 또한 신디사이저 악기인 테레민(theremin)에 의해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주파수가 변하면서 다른 소리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참여 관객은 일종의 퍼포머로서 TV 스튜디오로 변한 공간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통해 다양한 나라의 장소들을 방문하며 새로운 맥락의 몸으로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를 기록한 영상은 이후 지역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또한 2008년 베를린 <Congress of Culture> 전시에서는 스크리닝, 토크, 회의 등이 벌어졌는데 이들의 행위를 CCTV를 통해 두 공간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서로 다른 장소의 연결이자 감시의 구조를 만듦으로써 오늘날 미디어를 소비되는 신체 이미지에 관한 사유를 이끌었다.
이처럼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몸, 미디어에 의해 규정되는 정체성에 관한 주목은 작가의 근작 <이산, 신체, 재회>(2022)에서 여성의 신체로 구체화된다. 2 개의 다른 공간에서 각각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진행되며, 일부 퍼포머는 퍼포밍 도중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중계 영상시스템과 크로마키, 모션 캡처 기술을 사용하여 한 장소의 퍼포머와 다른 장소의 퍼포머 신체가 중첩 및 분리되기도 한다. 스크린 너머 트랜스된 여성의 몸이 미디어에 보이는 방식을 탐구한 이 작업은 앞서 그룹활동에서 실험한 스크리닝의 다양한 기법이 고도화됨을 알 수 있다.
글로벌 에일리언의 작업에서 관객의 몸은 인종이나 국가, 문화, 계급 등에 관한 경계(borderline) 드러냄과 동시에 내밀하고도 사적인 영역(boundary)을 교환하고 공유하는 매질이 된다. 더불어 언어가 지닌 소통과 배제의 이중성을 체감하는 장소가 되고,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피사체로서 탐구되었다. 이를 위해 낯선 환경에 투입되거나,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기 위한 장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참여자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정체성을 스스로 인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 세계의 질서를 차용하거나 살짝 틀어버리는 방식으로 그들은 질문한다: 당신 몸에 새겨진 경계의 좌표를 흔들어보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가, 협력 예술가, 참여하는 퍼포머 혹은 관객 사이의 협업적 예술 형식이 만들어진다. 각기 다른 주체들 간의 차이를 조율하는 작업 방식은 비정형적 요소들이 창발하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에 관한 유연한 태도로 이어진다. 이는 과거 글로벌 에일리언의 활동과 현재의 개인작업을 잇는 중요한 태도이며 현재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 H아트랩 2기 레지던시 아카이빙북 수록글(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