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아티스트랩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 eat
18세기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의 아포리즘 “Tell me what you eat and I’ll tell you who you are”에서 비롯된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이다’라는 표현은 음식이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명백한 지표로서 기능한다는 개념을 잘 보여준다. 음식 소비는 단지 생물학적 욕구와 결합된 것만이 아니라, “사회 계급, 지리학적 지역, 국가, 문화, 젠더, 생활 주기 단계, 종교, 직업들 간의 경계를 특징짓고 의례, 전통, 축제, 계절, 하루의 시간들을 구분하는 작용도 한다”.[1] 이처럼 음식을 통해 문화적 차이와 사회적 신분, 그리고 계급적 요소가 극명히 확인되었던 시대를 지나, 삶이 개인화된 오늘날에는 ‘먹기’와 개인의 관계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왜냐하면 식재료 선별에서부터 선호하는 조리법, 식사 습관이나 방식이 파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유통산업의 발달로 먹거리 체계의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이주와 이동이 손쉬워지면서 다양한 식재료의 수급이 가능해졌다. 음식 소비의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제한이 사라짐에 따라, 필요나 의지로부터 비롯된 선택적이고 의도적인 ‘먹기’는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특정 약을 복용하거나 특정 음식의 섭취를 거부한다면,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잣대로 그를 레이블링 labeling하게 된다. 건강상의 문제에서부터 (성적) 취향을 유추해내거나 현 체제를 비판하고 대안적인 사상을 지지하는 실천으로서 개인의 성향을 확인한다. ‘먹기’를 통한 이러한 ‘차이의 정체성’은 음식을 나누는 행위가 지닌 친밀감의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의심들과 차이들, 적대감들을 드러내는 언어”로서의 ‘먹기’ 말이다.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같은 사회적 몸통의 일부라면, 그러지 않는 사람들은 같은 사회적 몸통을 공유하지 못한다”. 특정 음식 섭취의 유무는 “사회적 자아와 사회적 타자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 것에 있어 강력한 수단으로써 기능한다”.[2]
코로나 감염병의 대유행 이전부터 국내외에서는 ‘소셜 다이닝 social dining’이 활성화되었다. 가족과 친구, 동료 단위에서 행해지던 식탁에서의 관계맺음이 낯선 이들과의 일시적인 만남과 네트워킹의 자리로 변모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과 1인가구의 증가, 그리고 도시적 삶에서의 생산성 극대화라는 비슷한 배경은 또한 온라인 콘텐츠를 보며 홀로 식사하는 ‘혼밥족’을 대거 양성하기도 했다.
찹 샐러드는 사람의 손과 눈을 영양소 공급이라는 일에서 해방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다. 사람들의 소중한 관심은 이제 더 긴급한 일이 있는 작은 스크린으로 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데이터를 소비할 수 있으니까. 비즈니스 관련 이메일을 보내고, 아마존으로 카탈로그를 보고, 페이스북의 끝없는 뉴스피드를 내리면서 기저귀를 쇼핑하거나 이웃들의 일상과 아기 사진 사이에 심어진 네이티브 광고에 빠져야 한다. 그 사람은 매우 생산적인 사람일 텐데 점심시간에도 인터넷 대기업의 수익을 증진시키고 있으며 이것은 분명 국가 경제에도 이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는 시간 활용을 더 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그 시간에 그것을 통해 돈을 벌고 있으니까?[3]
한편 음식은 쉽게 부패하고 먹은 후 분해되어 배설물이 되며, 생물학적인 만족을 제공한다. 먹는다는 것은 음식이 몸으로 침투하는 것이자 몸의 외부와 내부 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문명화와는 반대되는 동물적인 속성이자 자연적인 지점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4]따라서 ‘먹기’는 일반적으로 ‘동물적인’ 행동을 피하고 사회적 규범을 따르기 위해 계속해서 자기 규율을 행사할 것이 요구되는, 고도로 육체화된 경험으로 진화하였다. 이는 날씬하고 이상화된 ‘문명화된’ 몸을 통해 자기 통제가 되는 주체이자 자아 개념과도 연결된다.[5]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바디 프로필’은 ‘먹스타그램’, ‘먹방’과 공존하며,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도로 발달된 자기계발과 자기관리의 망령이 '먹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먹기’는 개인의 기호와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영향 관계 안에서 보다 촘촘하고 세밀하게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SNS와 1인 미디어를 통해 내가 무엇을 먹고 누구와 또 어떻게 먹는지를 샅샅이 공개하고 노출하는 문화 한가운데 우리는 존재한다. 스크린 너머로 ‘먹기’를 통해 자아를 연출하고 매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개인의 심리[6]가 먹는 것을 매개로 반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햄버거 커넥션 Hamburger Connection’[7]이 방증하듯이, ‘지금-여기’에서의 사적 행위가 다른 사회와 환경, 지구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과 ‘연결성’을 더욱 인식할 필요도 제기된다. 이처럼 2021년 ‘먹기’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고찰하는 것은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사회,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 key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의 식탁을 다르게 바라보기를, Bon appétit!
- <계란후라이, 선홍빛, 나, 골드베르크>(2021) 주제소개의 글
[1] 데버러 럽턴(박형신 옮김),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 음식, 몸, 자아』, 한울, 2015(1996), p.8.
[2] 영국의 사회-문화인류학자 해리 웨스트(Harry G. West)는 무슨 음식을 먹느냐를 넘어서 누구와 함께 먹는지(We are who we eat with!)가 중요함을 주장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마다, 로컬에서부터 전지구적인 범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정체성은 만들어지고, 관계들은 드러나며 공동체는 형성된다”. Harry G. West, ‘We are who we eat with: Food, distinction, and commensality’, Politics of Food (eds. Aaron Cezar, Dani Burrows), Delfina Foundation, 2019, p.137.
[3] 지아 톨렌티노(노지양 옮김), 『트릭미러: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생각의 힘, 2021, p.117.
[4] 페미니스트 이론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우유 위의 엷은 막’에 대한 혐오감은 음식에 관한 이분법적인 속성을 둘러싼 문화적 범주를 잘 보여준다. 데버러 럽턴, ibid., p.219.
[5] 데버러 럽턴, ibid., p.2.60.
[6] 고프먼에 따르면 개인은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자기연출을 통해 자기를 대하는 타인들의 반응(혹은 다른 이들의 ‘상황정의 definition of the situation’)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자기연출의 대표적인 무대로 SNS를 필두로 한 온라인 상의 활동을 꼽고자 한다. 어빙 고프먼(진수미 옮김), 『자아연출의 사회학』, 현암사, 2016(1959), p.14.
[7] 햄버거 패티를 생산하고자 조성되는 소 목장으로 열대림이 파괴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미국에서만 매초 200명이 1개 이상의 햄버거를 소비한다고 하며, 소고기 100g을 위해 약 1.5평의 숲이 사라지고 소의 방귀와 트림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는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소들에게 먹일 사료인 대두(콩)의 경작으로 아마존의 탈밀림화 및 공장식 가축산업의 동물권 문제 등은 과다한 육식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