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mple Life-Part2. Pastoralsim
금호창작스튜디오의 입주 작가들을 위한 기획전 「The Simple Life-Part2. Pastoralsim」은 미국의 저명한 미술비평가 토머스 크로우(Thomas Crow)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20세기 예술에 전원성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But can pastoralism still be said to have any place in twentieth-century art? (Thomas Crow, 1993)
이번 전시 타이틀로 인용된 크로우의 질문은 서양미술이 당연시해왔던 도상학적 의미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20세기 미술 안에서 '현대적인 전원성(modern pastoral)'의 본질을 파악하고 되묻고 있다. 즉 개념미술과 미니멀 아트, 장소-특정적 설치작품과 물신숭배사회를 재연하는 팝 경향의 작품 등이 난무하는 현대미술에서 '전원성'에 대해 주목하고자 하는 이 시도는, 거대담론이 아닌 (미시적) 일상성에 중심을 두고 나와 내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연결 된다. 본 전시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일상적인 풍경에 내포된 '동시대의 전원성'이다. 사실 '일상적인 것의 예술화' 혹은 '예술적인 것의 일상화'라는 주제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신성한 권리를 지상의 단계로 끌어내림으로써 예술의 민주화를 획득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위한 예술'이 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자기 모순적 상황에 빠져 오히려 현대예술 안에서 독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의 한 비평가가 20년 전에 던진 질문을 조금 바꾸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9명의 젊은 작가들에게 묻고자 한다.
'21세기 예술에서 전원성은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전시는 경기도 이천이라는 제한적인 지역에 입주해 생활하는 작가들의 눈을 통하여, '전원성(pastoralism)'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보고자 한다. 문자 그대로의 자연 이미지를 취합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의 풍경화를 제시하거나(박미선, 하지훈), 옛 정취를 느낄만한 요소를 작품 안에 끼워넣는 방식(송유림, 양주희), 혹은 예민하고 특정한 시각에서 특정한 풍경과 인간군상을 바라본다거나(신리라, 조문희), 생활 폐자재와 고상한 예술품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위트있는 작업(정기훈), 마지막으로 기존의 작업방식과는 다르게 재료 자체가 주는 날것의 느낌을 취하는 실험을 감행(김지영, 이수진)하는 작업을 선보이면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층위를 살펴본다.
잡지의 광고 등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적절한 배치를 통하여 캔버스 위에 재조합시키는 김지영은 상이한 이미지의 조합으로 드라마틱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collage drawing」 시리즈는 작가가 2008년도에 제작한 것으로, 평면회화작업의 레퍼런스를 소개하는 동시에 대중매체에서 얻은 자연의 이미지들과 드로잉이 생생한 느낌을 전달한다. 박미선의 회화는 '가로수'와 '공원'이라는 도심의 친숙한 자연물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배경이 생략되거나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그려져, 제목이 주는 구체적인 장소의 사실성에서 빗겨나간다. 이번 전시에서 노란 배경에 조각배가 나무 사이에 위치한 「보라매 공원」작품을 통하여, 그림자와 나뭇가지, 배경과 형상간의 이성적 논리가 모호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송유림은 실크 위에 임브로이더리(embroidery)라는 공예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을 매달거나 액자로 만들어 벽에 설치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공간과의 내밀한 소통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번 출품작 「the selected words; classics」 시리즈는 옛 신파극에서나 봄직한 통속적인 구절(예를 들면 '돈에 울고 사랑에 속고')을 레터링하여 옛 정취의 한 단면을 제시한다. 신리라의 회화는 건물, 공사장 등 일상의 공간을 간소화(simplified)시켜 세밀하게 표현하는데, 시간이 정지한듯한 정적인 공간이 주는 조용한 울림이 특징적이다. 이번 전시작 「Landscape-The way home」은 나른한 오후시간의 풍경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냄으로써, 도심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다른 시간대의 삶을 평면캔버스에 담아낸다. 시멘트와 벽돌, 귤과 나뭇가지 등 인공물과 자연물 사이의 이질적인 성격이 빗어내는 불협화음과 이에 내제된 '갈등'을 특유의 설치작업으로 보여주는 양주희는 이번 전시에서 사진을 출품한다. 너른 벼가 익은 시골 풍경이 담긴 우편엽서 크기의 이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옛 기억 혹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목가적인 취향에 담긴 노스텔지어(nostalgia)를 잘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이수진은 수영복을 입고 있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소녀들이 만들어내는 불안한 욕망과 연약한 위태로움을 특유의 감각적인 색감과 더불어 캔버스에 표현한다. 이번 전시 출품작 「scene」 시리즈는 코튼 위에 아크릴릭 방식으로 그려져 유동적인 천이 주는 날것의 느낌과 더불어, 늑대와 소녀라는 다분히 야생적인 원시성과 미성숙한 인간이 뒤엉킨 장면을 그려낸다.
정기훈은 설치와 사진 및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방식을 이용하여, 일상 사물과 신체의 그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기암괴석」은 조명에 의해 벽에 드리워진 아스팔트 조각 그림자를 기암괴석이라 칭함으로써, 지역에서 습득한 아스팔트 조각을 대자연이 만들어낸 고상한 예술품으로 둔갑시키고 예술의 가치와 그 효용성에 대한 일침을 가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와 같은 대중매체가 지닌 허구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영상작업을 해오는 조문희는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조적인 시각으로 보여준다. 각각의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무리의 인간들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느린 움직임으로 묘사되는 이 장면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한낱 티끌 같은 존재인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훈의 회화는 순수한 자연과 인공적인 형태가 뒤섞여 해체되고 재구성된 풍경을 제시한다. 독특하고 감각적인 붓질을 통해 숲과 자연이 가진 본원적인 힘을 표현하고 있는 이번 출품작 「forest」는 언뜻 보이는 프레임의 흔적에서 작가의 개입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에 의해 재구성된 이 풍경이 주는 기묘하고 낯선 상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풍경의 무대 안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The Simple Life-part 2. Pastoralism』은 경기도 이천의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환경에서 창작을 하고 있는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9명의 전시이다. 그들이 새로운 환경 안에서 녹아내는 작업들을 살펴보고, 입주기간을 정리해보고자 마련된 이번 전시는 입주 작가들이 발견한 경기도 이천이라는 '지역성'과 체류기간 동안 그들의 작업에서 엿보이는 생활환경과의 미묘한 변화 및 영향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기획되었다. 특히, 샘표식품공장 내에 위치한 샘표스페이스라는 규정되지 않은 공간이 지닌 특성으로 작가들의 작업이 지닌 전원적이고 참신한 성격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기대된다.
* 위의 글은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기획전(샘표스페이스, 2011년 9월 19일-10월 20일) 을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