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a Kyoungmi Lee
이경미

  

CITY CRACK

    코로나19가 남기고 간 질문. 2022     
    ︎︎︎왜, 지금, 혐오와 이주인가? (Text)    
    1인을 위한 테이블, 함께에 관한 물음들. 2021
    ︎︎︎적절한 간격들, 1인분의 삶. (Text)   
    도시를 만드는/도시로 만들어진 감정의 지형들. 2020
    ︎︎︎주체와 자리, 새겨진 감정들. (Text)  
    가상의 음식지형과 도시의 틈새들. 2019
    ︎︎︎1인 미디어에서의 먹기와 음식지형들. (Text)  
    ︎︎︎비통제의 플랫폼, 고가하부와 1인 미디어. (Text)


PUBLIC PUBLIC
    2045 거주(불)가능도시. 2024
    ︎︎︎ 에너지학교. (Seminar)    
    ︎︎︎ 새들을 위한 기념비. (Workshop)
    ︎︎︎ 일렉트립. (Local Trip)    
   신흥동 표류기 Records of Drift in Shinheung. 2023
   Document the Undocumented. 2022
   소멸지역 피칭데이. 2022
  

점점점 프레스 Gemgemgem Press
    박혜수 비평집. 2024
    ︎︎︎질문하는 사람. (Web page)
    ︎︎︎A Questioner. (Web page)
    로컬 매거진. 2024-


10000 ARTS 10000 ACTS

    ?THE NEXT!. 2022-23
    New Play, New Connection, New Normal. 2020-21
    ︎︎︎누가 광장을 두려워하랴? (Text)   
    ︎︎︎고립된 서사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법. (Text)
    ︎︎︎당신의 마음을 방역해 드립니다. (Text)   
    ︎︎︎포럼: 공공에서 공감으로. (Video)
    ︎︎︎아카이빙 북. (Publication)
    Playful - 고가아래 신나는 예술놀이터. 2019
    ︎︎︎해방된 놀이의 예술. (Text)
    옥수역 고가아래 공공예술 Playful. 2018
    ︎︎︎경험으로서의 예술: 골목에서 고가하부까지. (Text)  
    성수동 골목에서 즐기는 공공미술. 2017


토론극장: 우리_들 Forum Thatre: URI

    여기, 관객들이 있다. 2020 (Text)
    출판물 <토론극장: 우리-들>. 2020 (Publication)
    토론극장 2021 리뷰. 2021 (Video) 
    토론극장 9-10막. 2022 (Project)


금천아티스트랩 Geumcheon Artist Lab

    14인의 목소리 14 Voices from Here. 2022
    ︎︎︎만남과 대화가 만들어내는 예술. 2022 (Text)
    ︎︎︎이들이 금천이다. 2022 (Video)
    계란후라이, 선홍빛, 나, 골드베르크. 2021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이다. 2021 (Text)
    ︎︎︎웨비나-토크 프로그램. 2021 (Video) 
    금천아티스트랩. 2021-2022 (Website)


작은 테이블과 큰 물음들 Small Table, Big Question

    작은 테이블과 큰 물음들. 2020-2021 (Website)
    참여 기획전<TranstopiaⅠ>. 2021 (Video)
    성남 원도심과 개인을 가로지르는 것들. 2021 (Text)


사라지지 않는 1

    태평 빈집 프로젝트. 2019 (Exhibition)
    성남 원도심을 만들어 온 개인들을 찾아서. 2019 (Text)
    국제 학술지 리뷰 <Public Art 公共艺术>. 2021 (Text)


하얀 벽의 고백 Voices from the Walls
     전시 구성. 2023 (Exhibition)
     전시 서문. 2023 (Text)


TEXT

    횡단하는 천川으로 땅의 도시를 감각한다는 것. 2023  
    도시의 미래를 '지금 여기'의 삶으로. 2023
    얽힘의 장면들. 2023
    몸의 좌표에서 해방되는 과정의 예술. 2023
    미미한 것들의 이름을 찾는 여정. 2023
    비행기 소리의 소리의 소리: 소리에 체화된 기억. 2023
    공공예술을 말할 때 이야기 하지 않는 것들. 2022
    식탁 위의 예술 Art on the Table. 2022
    창발하는 순간들을 조우하며. 2022
    미래도시를 잉태하는 장소로서의 건축적 공간. 2021    
    다른 존재 되어 보기. 2021    
    인간과 기계, 공진화하는 주체들. 2021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2021
    불완전한 감각의 공간. 2020 
    새로운 ‘모뉴먼트’를 향하여. 2020 
    의미가 있던 자리. 2020 
    당신의 상상을 품은 달. 2020
    비가시적인 삶들이 조우하는 소리의 풍경. 2020
    실험의 공간, ‘유리-거울’ 건축. 2018
    맥락이 지워진 공간에 대한 탐색. 2016
    그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 2016
    좀 더 어두운 숲 A bit more darker forest. 2016
    시간의 향기 The Scent of Time. 2014    
    바람 불면 When the wind blows. 2014 
    자연스러운 Natural. 2014 
    발견하는 사람, 예술가. 2011
    도시적 공간에 대한 오마주. 2011
    The Simple Life Part 2. Pastoralism. 2011
    A Pictorial Scene. 2011


UPCOMING

    이주, 혐오, 코로나, 서울, 암스테르담. 2022- (Project)
    질문하는 사람 - 박혜수 비평집 발간. 2022-2024 (Publication)
    CITY CRACK #5. 2023 (Publication)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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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TEXT
횡단하는 천川으로 땅의 도시를 감각한다는 것 



성남은 땅의 도시다. 도시 빈민들의 거주지로서 이곳이 처음 선택된 이래 도시의 개발과 더불어 무수한 자본의 논리가 이 땅에서 지속되었다. 1960년대 후반 정부에 의해 ‘광주대단지’로서 본격적인 거주공간이 이곳에 자리 잡게 된 이후, 1990년대 분당, 2000년대 판교,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위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은 땅을 개발하고 그 위에 집을 무수히 짓고 서울과 연결된 매끈한 도로를 놓으며 그 모습을 만들어왔다. 수정구와 중원구와 같은 성남의 원도심은 급격한 경사로와 좁은 골목 사이에 지어진 20평대 벽돌 2층 다가구주택이 여전히 즐비한 풍경이다. 도시의  확장에 따른 변화의 흐름에 비하면 1970, 80년대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상대적으로 정체된 듯 보인다. 그러나 이곳들도 재개발과 재생,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1]  정책과 자본이 이동하며 소망과 욕망이 분출하고 여기에서 저기로 정주와 이주를 거듭하는 사이, 이 도시는 성장주의의 난개발이 허용되고 거래되기 쉬운 단위로 쪼개졌다. 가격표가 붙고 위계가 만들어졌다.

땅의 도시 성남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50년을 넘긴 시점에서 다시금 땅에 흐르는 물, 천川에 주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픈스페이스 블록스(open space BLOCK's)가 2022년과 23년 성남 원도심을 중심으로 선보인 공공예술 프로젝트 《천의 마을_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시의 하천이 담고 있는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훼손되고 은폐된 자연 환경 앞에서 우리가 지금껏 이 도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예술을 매개로 그 대안을 시민과 함께 모색하는 중요한 첫걸음을 보여준다. 


도시의 역사, 천의 역사  

용인시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합류하는 탄천(炭川)은 성남시를 남북으로 관통한다.[2] 이 물줄기에 관한 기록은 조선 초기 『태종실록』에서 ‘숯내’라는 이름으로 처음 확인된다. 백제 군사들의 훈련과 조선시대 궁궐 및 전시 대비용으로 남한산성에 공급하기 위해 숯을 굽던 곳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또한 성남에는 탄천을 제외한 모두 11개의 준용하천(동막천, 분당천, 운중천, 금토천, 야탑천, 여수천, 상적천, 금곡천, 대원천, 단대천, 독정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들 하천 모두가 탄천으로 유입된다.[3] 이처럼 성남은 유래 깊은 탄천과 여러 크고 작은 개천을 아우르며 형성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물줄기 역시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더 나은 삶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새 시대 꽃피는 새 성남건설”을 표어로, 땅으로 포섭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다.



[이미지 1] 1982년 복정동의 성남대로를 촬영한 사진 (출처: 성남시청 시정24 홍보갤러리)


성남이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우선적으로 진행한 것은 천을 복개하는 것이었다. 개천은 인구가 많아지고 공단이 들어서자 오·폐수 유입으로 더러워져 제 기능을 상실했다. 인구밀집과 늘어나는 교통량을 위해서는 도로가 필요하였다. 현 산성역과 태평역 부근을 흐르던 ‘독정천’과 상대원에서 하대원을 거쳐 모란시장을 지나던 ‘대원천’, 그리고 남한산성 유원지에서 모란역으로 흐르던 ‘단대천’이 1980년대와 90년대에 복개되어 각각 광명로(수정로), 공단로, 산성대로(중앙로)가 되었다. 성남 원도심 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도로는 모두 개천을 복개하여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천은 성남 원도심 교통의 젖줄이 됐다”.[4] 한편 90년대 초 탄천에는 보 15개가 설치되었으나 곧 방치되어 수질오염의 원인이 되었다. 농지에 필요한 물을 대기 위함이었으나 이내 분당 신도시 개발계획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그 목적을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5]

도시는 이처럼 하천을 전용하며 발전했다. 천은 도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한 모빌리티에 자리를 내어주고 지역 경제를 위해 스스로 썩어가는 고통을 감내했다. 도시가 만들어질수록 천은 원래의 기능과 모습을 잃었다. 지역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천의 마을_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성남의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진 하천에 주목한다. 인구 증가와 도로 확보의 필요에 따라 복개된 생활하천 세 곳(단대천, 대원천, 독정천)을 중심으로 복개되기 전의 기억으로부터 복개천이 다시 흐르는 가상의 미래까지 넘나들며 2년 간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구술 기록, 연극 공연, 가상현실(VR) 애플리케이션 개발, 시각예술 전시, 아카이빙 및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예술 방식으로 공론화시켰다. 천이 흐르는 도시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이 시도들은 성장주의적 접근을 멈추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도시와 공동체, 그리고 ‘나’를 연결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미지 2, 3] 1985년 광명로 복개 공사 및 완료 모습 (출처: 성남시청 시정24 홍보갤러리)


도시의 복원, 회상연극과 가상현실에서 구현된 기억의 장소

프로젝트는 <기억수집과 회상연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시작한다. 시민배우 ‘오문자’와 ‘박경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본 희극은 70, 80년대 “생활 하천에 대한 성남 시민들의 기억을 예술적 자원으로 활용하여 재구성”한 공연이다.[6] 따라서 내용과 형식 모두에 있어서 시민이 주체가 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시놉시스는 총 3막으로 구성되는데, 포항에서 시집와 시집살이를 하는 아낙네 ‘문자’가 겪는 빨래터에서의 이웃 간의 대화, 일에서 돌아올 엄마를 그리는 아이 ‘경화’가 겪는 친구들과의 에피소드, 포장마차에서 삶의 애환을 나누며 회포를 푸는 시간들을 통해 개천이 품는 도시의 기억들을 나눈다.

90년대 하천이 복개되기 전까지의 성남을 그리는 본 연극은 시민들의 경험담을 수집한 구술 기록에서 기인한다. 지역 문화원 원장, 재향군인회 회장, 민속5일장 상인회장부터 지역재단의 사무국장, 평생교육원 교장, 산악회의 대표, 스님과 공예 강사, 사진작가, 식당 주인, 상인 등 40명에 가까운 주민이 기록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들의 목소리는 각자 다른 삶 속에서 지역의 하천과 개천을 매개로 공통의 기억을 소환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여기에 시민배우 2인이 출연하는 참여형 연극으로 그 의미를 더한다. ‘시장에서 일을 하시던 엄마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 보았던 엄마 역할을 연기했다’는 박경화 시민배우의 인터뷰는 개인과 도시의 역사가 맞닿는 지점을 잘 보여준다.

이는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말한 ‘기억의 장소(Les Lieux de Mémoire)’가 가진 문제의식과 닮아있다. 그는 역사가가 정리한 역사를 일반인이 그저 배우는 방식을 비판하며, 일반인이 갖고 있는 역사에 대한 파편화된 기억을 바탕으로 역사를 새로 써보기를 주장한다.[7] 이러한 전복적 사고는 시민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가능성으로 연결될 여지를 보여준다.



[이미지 4] <'기억 수집' 아카이브>, 1000장 사진 및 구술 기록, 태평동 4144번지, 2023 (출처: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한편 <꿈꾸는 마을: 존재의 가상과 디지털 실상>에서는 지면 아래로 모습을 감춘 하천을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을 접목하여 가상현실로 복원한다. 앞서 회상연극이 인물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에 집중하였다면 ‘이미지 기억지도’는 하천이 복원된 도시의 모습을 구체적인 시각정보로  구현한다. 이 가상의 성남 원도심에서는 복개된 단대천, 대원천, 독정천이 다시 흐르고 그 주변으로 인간과 동식물, 사물들이 어울려 살아간다. 독정천 인근에는 놀이터와 운동장 너머 희망대공원을 비롯한 자연 친화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또한 ‘8·10 성남민권운동’(광주대단지사건)을 상징하는 버스도 놓여있다. 대원천에는 에코환경실험관, 모란민속5일장이 보이고 트램이 오간다. 단대천에는 성남종합운동장, 성남역사박물관, 한국빠이롯트만년필 공장과 남한산성 남문이 보인다.

지역 초등학교의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마을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수집하고, 애플리케이션에서 동물과 곤충, 벤치와 유모차 등 일상의 오브제를 이용자가 공간에 직접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지역의 자연이나 문화적 유산을 데이터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학교에 설치된 스마트 분리수거함에 병뚜껑이 채워지면 앱에 존재하는 수거함에 스마일이 표시된다. 실제세계와 가상세계를 연결시키는 이러한 기술적 상상력은 지역사회가 가진 공통의 문제의식으로 공유하고 세대 간 소통을 촉진한다. 그리고 하천에 담긴 역사와 생태를 그려내며 마을의 원류를 생각해 보는 교육 및 미디어 기반의 공공예술 활동으로 확장된다.


도시의 순환, 집의 안팎에서 흐르는 시간

본 프로젝트는 12인의 시각예술가가 참여한 전시 <사물의 시간: 예술과 만난 생활 속 오브제들>로 귀결된다. 1부와 2부가 연극 공연과 디지털 가상현실을 통해 직접적으로 복개천을 구현하는데 집중했다면 3부에 이르러서는 ‘생활 속 오브제’를 주제로 한 전시를 ‘집’의 안팎에서 진행함으로써 현재 삶의 양태와 환경에 주목한다. 여기서 생활 속 오브제란 “주거 및 생활 기반의 부침에 따라 기능을 달리하거나 쓸모없이 버려지는 사물”들이다. 실제로 창작의 소재 혹은 재료로 한국빠이롯트만년필 공장 철거 시 남겨진 자재들[김을, 이병철], 공사장 잔해와 콘크리트 파편들[이찬주], 2년 반 남짓 모은 지역 전단지[허수빈],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에 담기거나 폐기되는 사물들[이원호], 지역 하천에 버려진 폐자재나 버려진 물건[이돈순, 김태헌], 오르막길의 시멘트 조각들[조지은] 등이 사용되었다. 혹은 카세트테이프와 책상 서랍 등으로 90년대 방을 오롯이 구현하거나[정이삭] 곰팡이의 흔적을 드로잉(스티커)으로 남기는[송하나] 경우도 있었다.

이 모든 일상 속 사물들은 현재를 위해 사용되고 그 쓰임을 다한 후 무심히 버려진(질) 것들이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부서지고 또다시 만들어지는 순환의 여정과 닮아있다. 필요가 바뀌면 대체되는 것들이지만 삶 속에서 우리와 깊숙이 상호작용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이 비인간 존재들이 생(生)을 다함에 있어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없다. 1974년에 건설된 ‘성남제1공간’은 서민들의 생활 터전이자 산업발전의 역사를 함께 했으나 2019년 철거되며 사라졌다. 1993년 원도심 어딘가에서 비틀즈의 ‘레릿비(let it be)’를 부르며 꿈꾸었을 수많은 청소년 ‘박성남’들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파란색 이사 박스에 담기지 못한 샌들, 예비군모자, 밥주걱, 당구큐대, 파일폴더는 ‘유기’되었다. 태평공영주차장 옆에 버려진 우산, 프린터, 바퀴의자 하단부, 남문로 51번 길에 버려진 세제통, 가천대역 일성오퍼스원 앞에 버려진 자동차 바디 커버 등 공산품으로 구성된 생활 쓰레기는 계속 쌓인다. 매일 우편함에 꽂히는 광고전단지에는 지역사회와 동시대의 염원, 욕망과 정보가 넘치도록 실린다. 가파른 골목에 주차하기 위한 고임돌이나 대문 앞 주차금지를 위한 시멘트 조각들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자리한다.       
 

[이미지 5, 6] 3부 전시 동선인 태평동 골목과 <피어나다> 드로잉 스티커가 붙어있는 주차금지용 오브제 (출처: 23년 10월 1일 필자 촬영)


전시는 성남 원도심 태평동 골목에 자리한 빈집 다섯 곳에서 진행되었다. 1.5km에 이르는 골목 사이에 위치한 집들의 대문과 창문, 부엌과 거실을 거치며 작가당 하나의 방에서 한층 전체에 이르기까지 작품이 전시되었다.[8] 곰팡이가 잔뜩 핀 벽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천장, 조악한 장판과 삐뚤어진 부엌 찬장 등 시간성을 머금고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 리추얼은 매우 인상적이다. 세속적인 삶을 지우는 화이트큐브와는 정반대이다. 방 안에 들어서면 버려지거나 잊혀졌던 일상의 사물들과 마주한다. 삶의 모양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들이다. 사물과 방, 집 전체가 생물과도 같이 유한한 시간성 내에 존재함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 지역의 삶의 양태를 만들었던 것들과의 예기치 못한 조우는 거주의 경험, 특히 ‘집’에 관한 직⋅간접적인 논의를 불러일으킨다.[9] 미국 영문학자이자 생태문화이론가인 스테이시 얼라이모(Stacy Alaimo)는 ‘집’이라는 거주공간을 재설정하고자 한다. “경계를 지닌 집은 안전하다는 환상으로 만들어졌고, 소비주의라는 양분을 먹고, 국가주의적 판타지가 제공하는 연료를 주입받는 곳이다”.[10]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을 이분화하는 “서구적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빈집에서 진행된 작업들 속에서 ‘집’, ‘거주’는 안락함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우리가 울타리를 만들며 인간주의적 시각에서 품었던 환상과 욕망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만드는 다른 존재들, 사물들을 각인시킨다.

“인간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얼라이모는 자연으로 알려진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존재와 관계 맺음이 가능함을 받아들이는 거주의 윤리학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인간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생성하는 자연’ 속으로, 밖으로 향해야 한다. 집 밖 골목에서 진행된 몇 가지 프로젝트는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의 기획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다섯 채의 빈집을 이동하며 비좁은 골목에서 주차방지를 위해 세워둔 오브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그 위에 송하나 작가의 <피어나다> 드로잉 스티커가 붙어있다. 길가 전봇대 아래에는 맨드라미가 곱게 피어있다. 골목 바닥의 콘크리트 균열 틈새에서 자라난 맨드라미는 이돈순 작가와 협업으로 <맨드라미 길_맨드라미 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결과물이다. 또한 이찬주 작가와 협업으로 폐플라스틱 물엿 통을 100개의 우편함으로 업사이클링하여 태평동 일대의 대문에 설치하는 <에코 우편함>이 진행된다. 식물이 성장함에 따라 길가의 작은 변화가 감지되고 우편함으로 대화가 이어진다. 이러한 예술실천은 골목의 집들을 이어주고 집 안팎을 연결시켜 준다. 구릉지 지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다가구주택 옥상과 1.5km에 이르는 골목 곳곳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지역의 생활공간을 “예술적 표현의 공유지로 활용”하였다. 버려지거나 업신여기던 사물을 집 안으로 (다시) 들여오고 집 밖의 골목으로 나가 인공과 자연으로 뒤섞인 생태적 환경을 감각한다. 콘크리트 밑에 가려진 하천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행위는 개별화된 삶의 테두리를 느슨하게 만들고, 보다 통합적인 관점에서 지역의 삶을 조우케 한다.
 


[이미지 7, 8] 이돈순 직가와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협업하여 파종한 맨드라미가 핀 골목과 옥상 (출처: 23년 10월 1일 필자 촬영)


도시의 미래, 횡단하는 천의 가능성  

성남 태평동에 소재한 오픈스페이스 블록스는 문화예술 공동체를 지향하며 2016년 시작되었다. 원도심의 골목과 빈집을 거점으로 기획한 다수의 예술 프로젝트는 지역사회가 지닌 논의점을 공론화하고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예술활동을 근간으로 하였다. 2017년부터 삼년간 이어진 《에코밸리커튼》은 지역 아이들의 그림이 입혀진 차광막을 골목에 설치하는 프로젝트였고, 《스마트폰으로 본 세상_태평동》(2017)은 예술가와 주민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태평동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워크숍과 강연, 전시가 연결된 창의예술교육 프로그램이었다. 《태평 십시일반》(2020)을 통해서는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마을에서의 농업과 옥상 가드닝 활동을 통해 교류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건폐율이 높아 녹지가 부족하고 급경사의 골목으로 형성된 원도심의 모습을 다채롭게 바꾸며 공동체를 통한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장이었다.    

2020년 《움직이는 땅: 광주대단지사건》에 이르면 도시 개발의 역사 속 지역이 지닌 의미를 보다 비평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8·10 성남민권운동’의 50주년을 맞이하여  “자본에 의해서 경계 지어진 이 도시에서” “차별적이거나 배타적이거나 자본적인 모습으로 지역사회를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땅을 주제로 삼았다”(공동 기획자 김은영, 이돈순).[11] 흥미로운 지점은 다음해 개최된 《팝업아트 성남》의 <기억을 깨우는 마을지도>와 <마이-매크로 성남 미디어 아트>에서 하천을 본격적으로 주목한다는 점이다.[12] 주민의 기억을 구술로 채집하여 이미지 지도로 재구성하면서 사라지거나 변형된 하천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였다. 또한 12개의 동영상 고보프로젝터로 성남문화예술교육센터 로비 바닥에 프로젝션되는 미디어 작업은 성남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낱장의 이미지를 중첩시키고, 전체를 관통하는 탄천의 긴 물줄기에 합류하는 형상을 보여준다.


[이미지 9] <마이-매크로 성남 미디어아트>, 성남문화예술교육센터에 설치 현장, 2021 (출처: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의 프로젝트가 골목과 옥상, 주택에서 점차 하천으로 시선을 옮겨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남이라는 도시 전체, 그리고 대한민국의 도시사와의 관계까지 아우르는 통합성과 연결성을 가지고 다시금 내가 점유하는 작은 공간을 외부 환경 및 생태와 유연한 관계성으로 바라보는”(공동 기획자 이돈순) 것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아닐까.[13] 이를 위해서는 경계와 소유를 속성으로 하는 땅이 아니라, 땅을 횡단하며 무수한 연결과 통합을 보여주는 천을 모티브로 삼는 것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땅 위의 물줄기는 지역의 경계를 허문다. 장소들을 관통하고 횡단하며 이어준다. 빨래를 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나누는 아낙네들의 커뮤니티 장소이자 일터에서 돌아오는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다종다양한 생물들의 거처이기도 했다. 하천을 재감각한다는 것은 도시의 원형이 지닌 커먼즈의 감각을 깨우는 시도이다. 경계가 아닌 얽힘의 감각으로서 도시를 복원해 보는 것이다. 오픈스페이스 블록스는 《천의 마을-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 얽힘의 감각을 3부작으로 나누어 실행한다. 인간의 기억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사물을 통해 현재의 환경을 인지하며, 기술을 통해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상상한다. 과거, 현재, 미래와 여러 장소들을 중첩시키고 연결시킨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인간·환경·기술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공생하는 선순환적 미래에 한걸음 다가가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천이 가진 횡단성을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사유하는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1] 성남시 수정구 태평 2⋅4동은 2013년 재개발이 해제되고 2016년부터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2020년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성남시에 의해 조합설립동의서를 얻으며 민간에서 추진되기 시작하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전민정, ‘이주와 정주의 과정에서 중첩된 주민들의 인식과 감정’, 「CITY CRACK #2 <도시를 만드는/도시로 만들어진 감정의 지형들>」, pp.5-6.

[2] 성남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탄천炭川은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에서 발원하여 분당구 석운동에서 흘러내려 오는 동막천과 분당구 구미동에서 합류한다. 합류한 하천은 시의 중심부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성남시사 1』, ‘지리 -자연환경과 인문∙사회지리’, 성남시사편찬위원회, 2014, p.43.

[3] 『성남시사 1』, ‘지리 -자연환경과 인문∙사회지리’, 성남시사편찬위원회, 2014, p.55.

[4]  성남일보, 「복개천 정기적 실태조사 시급하다」,2001년 8월 6일자 (http://www.snilbo.co.kr/3287)

[5]  탄천 유역의 6개 지자체(경기도 성남시, 과천시, 용인시와 서울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 등 6개 시 구)는 2000년 ‘탄천유역 환경행정협의회’를 발족한 바 있다. 한편 2016년부터 시작된 환경운동연합의 보 철거 운동은 탄천의 미금보와 같이 용도를 잃고 도심지에 방치된 하천 구조물을 철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2022년 2월 탄천의 백궁보, 백현보도 철거되었다. 환경운동연합, 「성남 탄천의 변화, 하천의 과거와 미래를 보다」, 2022년 9월 1일자 (http://kfem.or.kr/?p=227712)

[6] 본 회상연극은 2023년 1월 바른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으며, 성남의 태동인 ‘8·10 성남민권운동(광주대단지 사건)’을 최초로 다룬 연극 ‘황무지’로 잘 알려진 ‘극단 성남93’의 대표 한경훈에 의해 연출되었다.

[7] 피에르 노라의 기획으로 10년에 걸쳐 120명에 달하는 역사가들이 참여하여 완성된 동명의 책이다. 집단의 기억을 기반으로 물질적⋅비물질적인 대상의 의미를 재정리하였다. 김은광, 「역사학자 120명이 참여한 ‘역사학의 혁명’」, 시사IN 172호, 2011년 1월 7일자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73)

[8] 3부 <사물의 시간: 예술과 만난 생활 속 오브제들> 전시는 2023년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2110, 1534, 3021, 865, 4144번지에서 개최되었다. 2110번지는 이부록, 이원호, 조지은, 정이삭 작가의 전시가, 1534번지는 허수빈 작가 전시 및 1부 회상연극 아카이브로 구성되었으며, 3021번지와 865번지는 각각 김을, 김태헌, 이돈순, 이병철 작가 그리고 송하나, 이찬주 작가의 전시 및 2개의 야외 프로젝트 아카이브 전시가 개최되었다. 4144번지는 1, 2, 3부의 아카이브 전시를 선보였다.
   
[9] 참여작가 12명의 조형 언어는 매우 다양하며, 결과물 역시 구상적인 작업부터 설치적이고 개념적인 작업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본 평론은 프로젝트 전반의 구조와 기획의 의미를 밝히는데 집중하고 있기에 개별 작품의 상세한 비평은 생략 하였다.

[10] 스테이시 얼라이모(김명주 외 옮김), 『노출: 포스트휴먼 시대 환경 정치학과 쾌락』,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23, p.38.

[11]   성남시, 성남문화재단, 성남도시재생지원센터의 지원으로 김호민, 이경희, 장석준, 허수빈 4인의 참여한 전시로, 2020년 8월 1일~14일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2110, 1·2층에서 진행되었다. 오픈스페이스블록스 <움직이는 땅 : 광주대단지사건> 기록 영상, 2020년 8월 10일 업로드 (https://www.youtube.com/watch?v=AvkzYb0hlU)

[12]  《팝업아트 성남》은 2020년 우리동네 미술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으며,  <마이-매크로 성남 책장형갤러리>, <기억을 깨우는 마을지도>, <마이-매크로 성남 미디어아트>, <에코-컬쳐샵> 등 네 개의 프로젝트가 성남문화예술교육센터와 성남중앙지하도상가에 나뉘어 전시되었다. “사람, 지형, 건축, 생태환경에 이르는 다양한 삶의 양상을 관찰, 상상, 표현, 교감하는 과정적 작업”으로 특히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생태 및 환경이라는 주제를 예술로 치환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13]  오픈스페이스블록스 <팝업아트성남> 영상 아카이브, 2021년 4월 26일 업로드 (https://www.youtube.com/watch?v=ZqzMltpdo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