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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시적인 삶들이 조우하는 소리의 풍경
- 강지윤 작업론
홍제천의 조용히 흐르는 물 사이로 간이 스크린이 설치된다. 화면 안에는 15명의 여성이 각자의 숨을 내뿜으며 소리를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가쁜 숨을, 누군가는 느지막하고 여린 숨을 내뿜는다. 얼굴 생김새와 나이가 다르듯 각기 다른 주체가 만들어내는 숨소리는 서로 조응하며 홍제천의 풍경 안에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를 만들어낸다. 산책을 나온 시민들은 벤치에 앉거나 천을 따라 걸으면서 이 소리의 풍경을 응시한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행위는 매우 일상적이다. 어떤 존재에게나 공평하게 수반되는 필수적인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숨소리에 주목하자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았던 그 소리들이 저마나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미시적인 차이들로부터 개별 존재들을 인식할 수 있다면? 강지윤의 작업은 ‘숨소리’라는 모티브를 통해 비가시적이던 존재를 드러내고 또 들여다보도록 한다.
이 작업에서 퍼포먼스의 주체가 되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은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1인 가구’이다. 정상가족의 범주 바깥에 놓인 1인 가구는 존재하나 세상밖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장려되는 ‘4인가족’ 형태에 위배된다. 그래서 지역의 커뮤니티에서 쉽사리 소외되고 지워진다. 혼자살기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더 잘 돌보기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고립되지 않고 타인/사회와 건강한 거리 및 관계맺음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성이자 1인 가구로서의 삶은 사회적 안전망과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동시에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얼마나 ‘정상’이나 ‘평범’이라는 사회적 기준 밖의 존재들을 외면하고 있는가?”
작품 <숨>이 만들어낸 합창 퍼포먼스는 미묘한 차이를 지닌 소리의 결들이 서로 마주하고 중첩되며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상과 평범의 범주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미약한 존재와 그들의 삶을 드러내고, 심리적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 앞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성이자 1인 가구라는 낱장의 개인들이 교류의 공동체로 바뀌는 순간이다.
퍼포먼스에 앞서 5회가량 선행된 워크숍은 참여자 15명이 사운드 및 움직임 과정을 함께하며,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나누고 불투명한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러한 관계 형성은 이후 퍼포먼스를 통해 1인 가구 여성들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정서적인 동질감과 연대의 공동체로 확장되는 상황으로 발전한다. 한편 3개의 채널 중 영상 하나는 그들의 삶에 관한 인터뷰와 사적인 공간을 담는다. 인터뷰 내에서 유사한 문장이나 모습은 자막과 장면들로 서로 연결된다. 유사한 지점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개별적 삶들이 연결되는 구성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경험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마스크 너머로 서로의 숨결과 호흡을 온전히 접할 수 없는 팬데믹 시대의 우리에겐 역설적으로 타인의 온기가 더더욱 절실하다. 잘 드러나지 않던 여성 1인 가구의 삶은 “그들의 미약한 숨소리가 쌓여 만들어진 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해 홍제천의 자연풍경 및 소리와 뒤섞인다. 재난 앞에 인간의 취약함을 매일 확인해야하는 오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기에 함께 살고 있다는 그들의 자그마한 외침은 보는 이들에게도 일종의 위로를 건네 줄 수 있지 않을까.
- 코로나19 서울공공미술 ‘100개의 아이디어’ 전시도록 수록글 (20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