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아티스트랩
계란후라이, 선홍빛, 나, 골드베르크
전 세계적 감염병을 겪으며 변화된 일상의 중심에는 ‘먹기’가 있다. 먹는다는 것은 사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행위로써, 개인의 기호와 취향을 넘어서 세대와 문화를 구분 짓는 상징, 산업 및 환경적 이슈와 미디어의 영향 관계를 반영한다. 현재의 우리가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먹는지’를 되돌아보고 그 이면에 담긴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자 기획된 본 전시는 <계란후라이, 선홍빛, 나, 골드베르크>라는 타이틀로 개최되었다.
반숙과 완숙, 소금과 후추 추가 여부 등 가장 심플한 조리방식인 ‘계란후라이’는 먹기에 담긴 개인의 선호와 취향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먹음직스러움을 상징하는 붉은 컬러 ‘선홍빛’은 환경문제에 있어 이슈가 되는 과시적 육류 소비와 현대 먹거리 체계의 음영(陰影)을 내포한다. 바흐의 변주곡인 ‘골드베르크’는 “청각적인” ‘먹기’가 이뤄지는 오늘날의 미디어를 환기하며, 하나의 주제 틀에서 파생되는 다채로운 예술가들의 관점과 해석의 변주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시는 개인이 속한 세계-소셜 미디어의 발달, 1인가구의 증가, 기후위기,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로서 먹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 ‘나’를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본 전시는 ‘먹기와 속도’, ‘상징으로서 먹기’, ‘감각적으로 먹기’라는 총 3개의 파트로 나눠, 총 8팀의 시각예술 및 무용 분야 예술가의 작업을 선보인다.
첫번째 파트 ‘먹기와 속도’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기’가 소비되는 현상에 관해 주목한 작품으로 구성된다. 바쁘고 초조한 도시에서 ‘먹기’는 적은 비용으로 현재의 불확실성과 지루함을 일시적으로 지우는 역할을 한다. 광고와 방송에서는 맛집, 요리, 식사를 콘텐츠로 소비하면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불안감의 자리를 건강, 안전, 행복, 재미로 대체한다. 과시적인 소비문화와 ‘푸드 포르노’라고도 불리는 자극적인 먹기 행위는 일상의 식사나 음식이 주는 기본적인 안위와 사회적 교류의 차원에서 벗어나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서 기능한다. 식사를 위해 따라야 할 준비 시간은 배달 앱을 통해 간편하게 구매되고, 오늘 한 끼도 손쉽게 때우며 생산적인 시간관리를 수행한다. 인터넷 데이터를 태우며 홀로 먹는 식사 장면에서 음식은 SNS를 위한 한 컷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효율성을 위해 오늘날의 ‘먹기’는 그렇게 쉽고 빠르고 화려하게 진화하고 있다.
배윤환, 허우중 작가로 구성된 그린코믹스의 온고잉 프로젝트 <그린코믹스>는 배달음식으로 인한 일회용 포장용기의 과도한 배출에 주목하고, 음식을 먹고 난 뒤의 처리 과정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이슈를 만화와 포스터, 굿즈와 벽화 형식으로 위트있게 조명해본다. 구자명 작가의 ‹소프트 머슬›은 ‘배달앱’을 구성하는 체제 및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소프트웨어의 구조를 신체의 근육과 같이 물질적인 조형물로 치환하여 시각화함으로써 오늘날의 식문화에 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유장우 작가의 ‹‘후루룹, 춥춥, 쩝쩝’›은 광고와 방송에서 먹기와 관련된 콘텐츠가 보여주는 클리셰를 재연하는 4채널 영상작업으로, 미디어를 통해 노동과 소비의 현장이 되어버린 오늘날 ‘먹기’를 사유하도록 한다.
그린코믹스 <그린코믹스 Green Comics>
페인트 드로잉 및 포스터 인쇄, 굿즈(티셔츠 및 에코백), 가변설치, 2021
유장우 <‘후루룹, 춥춥, 쩝쩝’>
4채널 비디오, 풀 HD, 컬러, 가변설치, 3분 00초, 2021
구자명 <소프트 머슬 Soft Muscle>
벽면 시트 설치 및 3D 프린트 조형물 3점, 가변 설치, 2021
두번째 파트 ‘상징으로서 먹기’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음식의 선정과 먹는 방식이 보여주는 개인의 정체성에 관하여 조명하는 작품으로 구성된다. 음식과 먹기는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고 그가 속한 세상을 드러낸다. 인종, 문화, 세대, 가치관, 직종과 취미 등에 따라 사용하는 식재료와 조리 방법, 식습관 등 ‘먹기’와 관련된 선택과 행위가 달라진다. 부먹/찍먹파, 민초단, 평냉 마니아 등으로 가벼운 구분을 짓기도 하고, 와인에 관한 상식 수준으로 권력과 지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동질감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신체”를 공유하게 된다. 한편 특이한 식재료를 사용하거나 특정 약을 복용하는 것처럼 ‘먹기’로부터 비롯된 차이는 사회적 자아와 타자 사이의 구별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수단으로써 기능하기도 한다. 이처럼 ‘먹기’는 개인적인 미감과 기호 차원에서부터 내면화된 사회의 구조와 세상을 이루는 체계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많은 상징들을 내포한다.
김재원 작가는 2채널 영상작업 <뻗어있고 엉켜있는 것들>에서 수분을 흡수하는 식물과 삼키는 행위라는 메타포를 통해 투약 행위와 긴장상태를 은유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개인의 정체성과 심리적인 측면을 ‘먹기’와 연결시킨다. 유재인 작가는 금천구 이주민 여성 1인 가구 3인의 식사를 기록하는 3채널 영상작업 <내 이웃의 식탁>을 통해 이방인, 가장, 노동자, 여성으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개별의 순간들을 공유한다. 최경아 작가의 <후렌드(Who+Friend) 세대의 후라이>는 계란후라이 조리 방법에 관한 MZ세대 대상 설문을 기반으로 다양한 취향을 페인팅과 카드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먹기’를 매개로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김재원 <뻗어있고 엉켜있는 것들 Stretched, Tangled Things>
2채널 비디오, FHD, 무음, 컬러, 4분 18초, 2021
유재인 <내 이웃의 식탁>
싱글채널 비디오 3점, 믹스트미디어 가변설치, 각 20분 내외, 2021
최경아 <후렌드(Who+Friend) 세대의 후라이>
설문 그래프 시트 설치 및 페인팅 5점, 후라이 카드, 가변설치, 2021
마지막으로 ‘감각적으로 먹기’에서는 미디어를 통해 먹기와 관련된 콘텐츠가 감각되고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작품으로 구성된다. 미디어에서 범람하는 ‘먹기’에 관한 이미지 및 사운드는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에서 촉각적으로 다가온다. 지글지글 끓는 빨간 찌개와 쩝쩝거리며 먹는 모습 등 반복되는 시청각 자극을 통해 우리는 ‘팅글(Tingle)’을 경험한다. 소리 감각을 증폭시킨 ASMR과 작은 단위를 포착한 세밀한 시각적 화면은 일반적인 범주에서 보고 듣는 것의 균형을 무너트리며 특유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쾌락 반응은 때로는 심리적 안정감과 흥미를, 때로는 낯설고 불편한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무언가를 먹는 실제 행위 대신에 먹는 것을 ‘보고’ 먹는 것을 ‘듣는’ 시대, 미디어 속에서 시청각적으로 접하게 되는 오늘날의 ‘먹기’는 우리의 감각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김민정 작가의 단채널 영상작업 <Tango: 현재의 식사 습관 연구>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먹는 것을 보는’ 시청 행위가 지닌 감각과 ‘먹는 것을 보면서 따라먹는’ 행위 속에서 오늘날의 식탁 풍경을 드러낸다. 박성율 작가의 사운드 작업 <일상, 사이, 그리고 불편함>은 ‘먹기’와 관련된 소리를 수집하고 먹방 ASMR과 같이 사운드를 증폭시켜 이미지와의 괴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통해 미디어 속 감각을 재조명한다.
박성율 <일상, 사이, 그리고 불편함>
사운드 및 설치,가변설치, 6분 49초, 2021 (사운드 협업 김현수)
김민정 <Tango : 현재의 식사 습관 연구>
싱글채널 비디오, FHD, 스테레오 사운드, 8분 16초, 2021 (퍼포머 박성율)
한편 전시기간 동안 진행된 연계 프로그램은 워크숍, 스크리닝, 퍼포먼스, 토크, 렉처 퍼포먼스 영상 등 관객과의 상호 소통의 자리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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