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0 ARTS 10000 ACTS
당신의 마음을 방역해 드립니다.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 시간 후 남는 자투리 시간에 즐기던 스낵 컬처(Snack Culture)의 업그레이드 버전[1]이 2020년 초부터 이어진 ‘비대면의 시대’에 무료한 집과 방안에 침투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년 5월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전에 비해 온라인/모바일 콘텐츠 이용비율이 54.8%에서 69.1%으로 대략 15%정도 상향되었다.
기승전결을 따라갈 필요 없는 전개와 감각을 자극하는 콘텐츠들을 과도하게 시청하는 상황은 무엇을 방증하는 것일까. 거리의 간극을 만드는 온라인 미팅이나 지침과 배려라는 명목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회 속에 존재하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실질적인 감각이 무디어지는 상황. 그리고 일자리와 경제적인 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현실. 여기서 기인한 불안과 우울감, 지루함을 무의식적으로 떨쳐버리려는 것은 아닐런지. 팬데믹 종료나 상황 개선에 대한 예측이 여전히 흐릿한 시점에서 코로나19 방역 못지않게 시급한 것은 개인들의 ‘심리 방역’일지도 모른다.

정서적 안정감과 유대감을 얻을 수 있는 매개로서 ‘가드닝’을 떠올린 것은 우연히 아니다. ‘반려식물(pet plant)’, ‘홈 가드닝(home gardening)’이라는 단어가 그 어느때보다도 친숙해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식물 키우기는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대안이기도 하다.[2]식물을 키우면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작은 생명체와의 교감을 갖는 시간, 더 나아가 여럿이 함께하는 가드닝은 지역 내 공동체 활동 안에서 개인의 심리적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동대문구 이문동의 주민 커뮤니티에서는 실제로 골목에 주민 화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문동에는 코로나19 방역뿐만 아니라 녹지 및 놀이시설의 부족, 쓰레기 무단투기 문제, 재개발로 인한 주민간 갈등 등 여러 이슈가 있는데, 골목을 따라 길게 늘어선 주민 화단은 이러한 지역사회의 이슈를 집약하는 듯했다. 공공장소에 식물을 키우는 행위는 쓰레기 투기에 대한 각성이자 부족한 녹지시설을 대신하는 것이기도 했고, 지역 재개발 공사장에서 수거한 벽돌조각 등으로 만들어진 화단은 재개발로 인한 이슈를 상징하고 있었다. 일상의 공간이 축소되고 공공장소에서의 활동이 제약되는 오늘날, 가드닝은 이처럼 개인의 마음을 케어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여러 이슈까지도 함의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문제를 재고하고 치유하는 커뮤니티 활동의 잠재성을 보여준다.
아파트 단지와 오래된 주택 지역의 경계에 위치한 이문 고가하부는 이전부터 장기를 두시는 동네 어르신분들의 사랑방으로서 기능하는 곳이었다. 이곳에 서울시의 ‘고가하부 공간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새로 지어진 중층의 구조물(루프 스퀘어)이 2020년 4월 들어섰다. 중층의 높이로 인해 신이문역 지하철 플랫폼이 바로 보이고 노포의 간판과 인근 주택의 지붕기와가 훤히 보이는 위치 덕에 지역의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조망할 수 있다. 출퇴근하는 회사원, 아파트 단지의 젊은 부부와 아이, 노포의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고기 굽는 연기와 냄새, 장기내기로 신난 노인들의 목소리들이 시청각적으로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렇듯 지역의 커뮤니티 및 주민들의 교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접점의 가능성을 이문 고가하부는 지리적으로 보여준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만 하는 특성으로 작은 섬처럼 한적한 이곳은 쓰임이 정해지지 않은 공간이다. 따라서 처음 이 중층공간이 설계될 때 의도되었던 것처럼 오히려 “이용자 주도의 가변형 야외 커뮤니티 공간”이 가능한 곳이다.

참여주민 30명의 이야기를 담아낸 <컬러링 이문> 현장 사진
(글자체 디자인: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 히읗, 공간 디자인: 장종민 디자이너)
만아츠 만액츠는 이문고가하부 공간의 물리적 특성과 지역의 이슈를 담아낼 수 있는 모티프로 ‘가드닝’에 주목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개인의 심리 방역을 위한 치유적 커뮤니티로서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제안해본다. 일시적인 연대의 장소로서의 고가하부의 가능성을 설치작업 및 프로그램으로 엮어내는 한편, 식물을 관찰하며 개인의 내면을 케어하는 가드닝을 함께 진행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의 감각을 다시 일깨우며 치유적 커뮤니티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해본다.
엄아롱의 공공예술 설치작품 <공유를 위한 파티션 Partitions for Sharing>은 ‘나누다’라는 단어가 지닌 중의적 의미, 즉 분할과 공유의 개념에 집중한다. 여럿이 사용하는 벤치나 공간 사이를 파티션으로 나눔으로써 뉴노멀 시대에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예술적으로 드러내고, 화분 거치대이자 벤치, 게시판 등 다용도로 변형되는 작업을 통해 유휴공간에서의 다양한 활동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주민 참여기반 프로젝트 <#링링링 #CaringSharingColoring>(김선동, 서요한, 양은영, 최경아 기획)은 연대와 연결의 감각을 확인해보는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식물 큐레이션을 통해 개별 매칭된 식물을 키우며 한달 간의 온라인 챌린지를 통해 생성된 주민들의 이야기는 개성적인 글자체 디자인을 활용한 공간 레터링 작업을 통해 이문 고가하부를 채운다.
︎︎︎ 이문고가 프로젝트 바로가기
- 만아츠 만액츠 큐레이토리얼 에세이 (2021)
[1]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에 10∼15분 내외로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또는 문화 트렌드를 말한다. 2010년 전후 스마트폰기기가 대중화되면서 가속되었는데, 여기서 ‘업그레이드 버전’이란 포스트코로나 시대 호흡이 짧아진 동영상 컨텐츠 범람을 일컫는다.
[2]포스트 코로나 시대 감정과 식물 키우기의 심리적 효능에 대한 기사는 다음과 같다. 이승연 기자, 「초록에서 얻는 심리 방역 ‘그린 인테리어’에 빠질 시간」 (매일경제신문, 2020년 5월 7일자 기사)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0/05/465673/(2021년 9월 24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