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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이고 고립된 서사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법‘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 형식의 환경감수성 테스트 ‘나도 환경파괴자?!’ (︎ 테스트 바로가기) 속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Q. 오늘부터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효과가 더 큰 실천행동은 무엇일까?
① 출퇴근용 승용차를 전기차로 바꾼다.
② 소고기를 먹지 않고 콩으로 단백질을 섭취한다.
물론 둘 모두 지구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다. 그러나 여기서 정답은 ②에 가깝다. 전기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내연기관차의 약 1/3 수준이라고 하지만, 소의 트림과 방귀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약 25배라고 한다.[1] 더욱이 공장식 가축산업으로 인해 지구의 육지 포유류는 소, 돼지, 닭 등 가축이 60% 이상 (인류까지 포함하면 약 97%)을 차지하고 야생동물은 고작 3~4%에 그친다고 하니, 인류에 의해 지구의 생태계 자체가 인간중심적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인류세 지층에는 방사선 낙진, 플라스틱, 콘크리트, 그리고 닭뼈(!)가 주요 화석으로 발견될 것이라 예상한다.[2]
환경감수성 테스트 ‘나도 환경파괴자?!’
결과값 이미지 (일부) ⓒAABB
위의 질문에 올바른 답을 했던 못했던 간에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작년 이상기록을 남긴 54일간의 장마를 경험하며, 인류가 짧은 시간동안 만들어온 이 지질학적인 변화는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당장 그 자리에 필요한 것에 이끌린다. 일회용기 배출에는 매번 죄책감을 느끼지만 당장의 편의를 위해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다. 더욱 빠르고 멀리 가기 위해 차(비행기)를 이용하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데이터를 소비하며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환경 정책에 관심을 갖고 집단행동에 참여하기에는 약속이 너무 많다. 치명적이지만 저기 멀리 있는 (것 같은) 현실에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최근 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1000달러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 구입, 휴가 계획 세우기, 예금, 은퇴 후 투자, 이 네 가지로 나누어 보라고 대상자들에게 질문하였는데, 자신의 나이든 모습을 이미지로 직접 보여준 경우는 보여주지 않은 경우에 비해 은퇴 자금에 두배 가까이 많은 돈을 넣었다고 한다.[3] 이처럼 우리의 감정 반응은 나와의 고리 안에서, 그 이미지가 생생할수록 더 강해진다. 그런데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는 개인 행위의 인과가 가시적이지 않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서사이다. 본인(의 행위)과의 연결성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인지되지 않을 때 잘 동요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인류세라는 시대적 위기 앞에서 이러한 ‘무관심 편향’으로부터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까?
한남1고가차도 하부 현장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프로젝트의 대상지인 한남제1고가가 포함된 강남대로(한남IC에서 한남대교)는 1일 15만대 이상의 차량이 통행하는 하루 교통량이 최대인 구간 중 한곳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1970년대에 만들어진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통행량을 분산시키고 서울 중심과 한강이남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고안되어, ‘더 빠르게, 더 가깝게, 더 많이’라는 메가시티의 효율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메커니즘 이면에 감춰진 각종 환경문제, 특히 유해배출 가스로부터의 비롯된 대기오염 또한 한남고가의 장소성이기도 하다.
만아츠 만액츠의 <한남 고가 프로젝트>는 장소성으로부터 비롯된 환경이슈를 보다 생생하게 인지시키고 우리의 삶(들)과 연결시킬 수 있도록 예술적이고 참여적인 경험을 제시한다. 이는 추상적인 고립된 서사에 구체적 일상의 이미지와 공동체적 감각을 더함으로써, 무관심 영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타진해보는 시도이다. 더불어 ‘한남고가’라는 지리적·물리적 장소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디지털-인터넷을 기반 작업 방식을 적극 활용한다. 이는 넷제로(탄소중립), 탄소국경세, RE100(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글로벌 회사들의 캠페인) 등 새로운 전환점의 시대가 초국가적으로 논의되고 팬데믹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오늘날의 감각을 반영한다. 한남고가를 구성하는 프로젝트는 따라서 더욱 확장된 공론장이자 지구시스템을 구성하는 공동체로서 참여적·경험적 아카이브 공간이다.
<Babel×Babel>
프로젝트 이미지 ⓒAABB
스튜디오 AABB의 <Babel×Babel>은 참여자가 쓰레기 이미지를 업로드하여 개인의 탑을 만들고, 각자의 탑으로 거대한 바벨탑을 축조하는 참여형 웹아트이다. 개인이 배출하는 다양한 오물에서부터 불필요하게 소비된 상품, 스마트폰으로 쉴 새 없이 생산되는 사진과 웹 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이미지까지, 이 모든 것들이 쓰레기 탑의 재료가 된다. 하늘에 닿는 거대한 탑을 만들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과 실패에 관한 ‘바벨탑’ 신화를 모티브로, <Babel×Babel>은 인간의 오만으로 마주한 환경위기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본 작업은 일상에서 개인이 배출하는 갖가지 환경유해 행위를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참여가 많을수록 점차 거대해지는 쓰레기 탑 구축의 프로세스를 통해 소비를 독려하는 소비자본주의 시스템과 여전히 자행되는 개발 및 성장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현실과 웹 상에서 끊임없이 자원과 데이터를 태우며 인간중심적 이상향을 갈망하고 있는 사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낙원 풍경 속에 해골이 겹쳐 보이듯, 실상은 인류의 종말로 향하고 있는 것임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유토피아>(1516) 표지
한편 카입KayipX이슬비의 <Carbon Clock>은 올해 9월 한남 고가 하부에 설치될 증강현실 작품으로, 보다 직접적으로 기후위기로 펼쳐질 미래의 모습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관객은 앱을 통해 포털 속 가상의 한남 고가하부 공간을 만나게 되는데, 2070년까지 탄소배출에 따른 공간의 소멸을 빠른 시간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앱을 시작하면 탄소배출 및 환경과 관한 10가지 질문이 주어지고, 관객의 답변은 이 가상 세계의 방향을 결정짓는 열쇠가 된다.
또한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2050년에 보내는 관객의 메시지는 지속적으로 아카이빙되며, 이는 가상의 공간에서 시각화되고 소리로 해석되어 점차 변화해가는 공간 속을 부유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근미래의 풍경과 사운드로 구성된 본 작업은 기후위기에 관한 즉각적이고 생생한 체험을 가능케한다.
︎︎︎ 한남고가 프로젝트 바로가기
- 만아츠 만액츠 큐레이토리얼 에세이 (2021)
[1] 강찬수 기자, 「오죽하면 '방귀세' 생길 뻔···자동차 가스보다 독한 소 방귀」, 중앙일보, 2021.02.12 [확인 2021.7.1]
[2] 조유진 기자, 「지질시대 ‘인류세’를 아십니까… 닭뼈 화석이 많이 나올 거랍니다」, 조선일보, 2020.01.18 [수정 2020.01.20, 확인 2021.7.1]
[3] 조너선 사프란 포어, 『우리가 날씨다』, 민음사, 2020,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