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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상상을 품은 달
- 박우성 작업론
지구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위성, 달은 지구에 미치는 인력으로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 동식물의 생체 주기에 많은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거북이는 보름달이 뜨는 때에 알을 낳으러 해변으로 몰려들고 달이 차고 지는 변화주기는 여성의 월경주기와도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달은 그 물리적인 영향력만큼이나 인류사에서 많은 서사를 만들었다.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하는 ‘늑대인간’ 전설이 구전되고 달과 광기를 연관시켜 만들어진 “루나틱(lunatic)”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한편 중국과 한국 등 동양에서는 불로장생 약초 혹은 떡을 찧는 토끼가 달에 살고 있다는 설정을 통해 행복과 장수 등의 염원과 풍요의 상징을 달에 투영시켰다. 1969년 인류가 달에 다녀온 이후에도 여전히 달은 우리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상상력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양재천 위에 둥근 달이 떠 있다. 그 달에 가까이 다가가자 토끼가 나타난다. 그 토끼 형상의 실루엣은 당신처럼 움직인다. 당신은 달 안에 살고 있는 토끼다. 달에 사는 토끼라면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달에 사노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달은 어떤 모습일까?
박우성 작가의 작업 <달엔 누가 살고 있을까?>는 예부터 달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인간의 독특한 사유와 관념에 주목하고, 달과 인류의 관계 내에서 읽히는 다양한 서사에 주목한다. 본 작업에서는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정서에 기반하여 ‘토끼’라는 모티프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달 표면의 그림자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달에 ‘옥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 옥토끼”라는 서사는 신비로운 장소이자 아름다운 이상향으로서 달을 인식하도록 한다. 달의 주기변화가 미치는 영향력을 직·간접적으로 체감하면서 밤하늘의 달을 이해하고 싶었던 우리에게 달은 인간의 호기심과 경외심, 관점이 뒤섞인 장소로서 인지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달의 장소성을 양재천에 구현하고자 미디어와 라이트라는 요소로 구성된 작품을 제안한다. 달의 형태를 한 대형 구조물은 한쪽면에는 조명, 반대면에는 3D 프로젝션 매핑 방식으로 설치된다. 대상지인 서초구 양재천은 휴식과 산책의 장소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되는 곳이나 야간에는 어두운 편이다. 따라서 작업은 평상시에는 대상지 공간을 밝혀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기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업에서 가장 핵심은 카메라와 모션인식 센서, 프로그래밍을 통해 관람객을 촬영하고 빔프로젝터로 촬영된 영상을 변환시켜 투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으로 인해 대상지를 지나가는 주민은 실시간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
참여자의 모습을 변화시킨 이미지와 작가가 제작한 그림자 영상은 실시간으로 달의 한쪽 면에 투사된다. 달 구조물에 마주하는 풍경과 인물은 대상지에 새로운 내러티브를 덧대며 참여자에게 상상력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말처럼 이 작업에서는 “주어진 매체를 통해 관객이 직접 자신의 느낌을 바탕으로 작품 속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인터렉션을 바탕으로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작업에 반영하는 본 작업은 관객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는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움직임으로 나름의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도록 독려하는 작업은 양재천을 거니는 주민들에게 작업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 코로나19 서울공공미술 ‘100개의 아이디어’ 전시도록 수록글 (2020.12.)